아태재단 '돈 줄기' 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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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이 김성환 전 서울음악방송 회장의 소환 일정을 잡음으로써 이용호 게이트 수사에서 파생된 이른바 '아태재단 의혹'이 본격적인 수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수사의 핵심은 34개에 이르는 金씨 차명계좌의 정체다.

아태재단 운영위원인 金씨의 계좌 추적 결과 검찰은 상당액의 돈이 아태재단 관계자들로부터 입금되거나 이들에게 흘러들어갔음을 확인한 상태다. 때문에 이들 계좌와 계좌에 드나든 돈의 성격을 캐면 그와 아태재단,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관심이 집중된 김대중 대통령 차남인 김홍업 재단 부이사장과의 관계가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미 이들 계좌를 통해 오간 자금의 흐름이 상당부분 비정상적이며, 상당액은 金부이사장 또는 아태재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가 24일 金부이사장의 개입 정황을 시사한 것은 특히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드러난 이권 개입 혐의들=현재 드러난 이권 개입은 재단 상임이사였던 이수동씨가 금감원 조사 무마 청탁을 받으며 이용호씨에게서 5천만원을 받은 것이 있다. 이수동씨는 각종 인사청탁과 또 다른 이권 개입 때문에 아직도 대검 중수부의 수사를 받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임정엽씨는 이 재단 기획실장 시절 건설업체 이권에 개입하며 억원대의 돈을 받은 혐의로 지난 22일 구속됐다. 그는 金부이사장이 김대중 대통령 선거운동을 할 때 핵심 참모로 뛴 공로로 재단에 영입된 金부이사장의 측근이다.

김성환씨 역시 재단 운영위원이다. 기부금을 많이 내는 핵심 후원회원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에서 그는 한 외식업체 특별세무조사의 처분을 가볍게 해주는 조건으로 억원대의 돈을 받은 것을 비롯해 여러 건설업체의 인허가 및 수주에 관여하며 모두 8억원 가량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 비리인가, 재단 차원 비리인가=현재 이들 청탁건에 아태재단 핵심 인물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드러난 것은 없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영향력이 없던 이들이 이처럼 막강한 힘을 누리게 된 것을 아태재단 또는 이 재단의 실질적 총책임자인 金부이사장을 언급하지 않고 설명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또 이수동씨와 안정남 전 국세청장이 상당한 친분을 유지했으며, 金부이사장이 1990년대 중반 한 건설업체에 사무실을 두고 일하는 등 건설업계와 인연이 깊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때문에 김성환씨에 대한 조사는 여기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명계좌 정체 밝히기가 열쇠=검찰이 김성환씨가 관리해온 34개의 차명계좌에서 金부이사장 쪽으로 건네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돈은 10억원 가량으로 전체 자금 규모의 20분의 1에 불과한 금액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돈의 주인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김성환씨는 대부분이 자신의 사업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이런 자금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다.

따라서 이 돈의 실제 주인은 따로 있으며 김성환씨가 이 돈으로 운영한 사채업체와 위성방송사업의 실제 주인은 따로 있다는 가정도 할 수 있다. 특별한 사업적 경력이 없는 김성환씨가 벌이는 사업에 여러 기업체들이 선뜻 거액을 투자한 것도 이러한 가정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이 계좌에서 나온 돈이 아태재단 신축공사비와 직원 퇴직금으로 지급됐다는 사실은 이들 계좌가 金부이사장 또는 아태재단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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