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소리꾼' 이명희 서울서 흥보가 완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서울에 안숙선(安淑善)이 있다면,대구에는 이명희(李明姬)가 있다."

1995년에 작고한 만정(晩汀)김소희(金素姬)명창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이명희(56) 명창의 판소리는 중앙 무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만정제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게 국악계의 평가다. 대중의 입맛에 맞게 소리를 변형시키지 않았다는 것. 국립창극단에 들어오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대구에 남아 영남 판소리의 옛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그의 고집이 최근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명희 명창이 오랜만에 서울 무대에 선다. 오는 27일 오후 3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흥보가'완창무대를 꾸민다. 이어 다음달 3~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창극단이 펼치는 완판 장막창극 '성춘향'에서도 안숙선 명창과 나란히 도창(導唱)을 맡는다. 서울에서 판소리 완창은 93년 '춘향가'이후 처음이고 창극은 '데뷔'무대다.

이씨는 김소희 명창과 비슷한 데가 많다. 외모나 몸집은 물론 성음(聲音·음색과 창법)까지 스승을 빼닮았다. 스승을 무척 따르다보니 만정이 모정(慕汀)이라는 예명까지 지어줬다.

"아니리를 하다보니 무심코 '아이가''우야꼬'라고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나옵디다. 그래서 몹시 혼났죠. 서울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선생님의 테이프를 들으면서 공부했지요. 요즘 만정제를 가장 정확하게 구사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옛 것을 그리워하나 봅니다."

동문인 안숙선(53)명창의 소리가 여성적이라면 이명창의 소리는 남성적이다. 만정은 생전에 "명희는 남자들만 낼 수 있는 저음의 하탁성(下濁聲)도 잘 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씨가 유연하고 감칠 맛 나는 계명창에 뛰어나다면 이씨는 투박하면서도 힘있고 선이 굵은 스타일이다.

만정 문하에 입문한 것은 안씨보다 7년 빠르지만, 20세 때 결혼하면서 판소리계를 떠났으니 늦깎이 소리꾼인 셈이다. 85년부터 6년간 지리산 칠선계곡에 파묻혀 독공을 한 끝에 90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부문에서 영남 출신으로는 최초로 장원에 입상했다. 96년 같은 대회에서 장원에 입상한 주운숙(49)씨가 그의 제자다.

"힘있게 쭉쭉 뻗는 소리를 내다보니 재미있고 맛깔난 소리가 아쉬울 때도 있어요. 완창할 때도 다른 사람보다 두 배로 힘이 듭니다."

이명창은 판소리는 전라도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바꿔 놓기 위해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모추월·박초행·김소희·박동진·박귀희 명창 등이 활동했던 소리의 고장 대구가 해방 후 판소리 불모지가 된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10년전만 해도 판소리 공연을 하면서 초대권을 뿌려도 보러오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요즘엔 유료관객들로 객석이 꽉 들어차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영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60여명의 제자들로 대구시립창극단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02-2274-1173.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명창 이명희는…

1946년 경북 상주 출생

1963년 김소희 명창 문하에서 판소리 입문

1983년 결혼 후 17년만에 다시 판소리 시작

1986년 김소희 명창의 판소리 이수자

1990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부문 장원

1991년 국립극장서'흥보가'완창

1993년 국립극장에서 '춘향가'완창

1995년 서울국악대경연대회 판소리 대상

현재 사단법인 영남판소리보존회 이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