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 넘으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 ‘펀드 환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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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쯤이면 거의 고질병이 된 듯하다. 올 3월과 4월 코스피지수가 1700을 넘나들 때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대량 환매가 나타났다. 유럽 재정위기로 지수가 급락한 뒤 다시 1700선을 회복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1650선을 맴돌던 이달 초순에는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하루 평균 100억원 정도가 빠져나가더니, 지수가 1690.6까지 오른 14일에는 855억원이 순유출됐다. 순유출 규모는 17일 2078억원, 18일 2527억원, 21일 2992억원으로 확대됐다. 이달 들어 21일까지 총 1조737억원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갔다.

동양종금증권 김후정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1700을 넘어서자 단기 고점에 이르렀다고 본 투자자들이 환매한 것”이라고 말했다. 3, 4월에 코스피지수가 1750까지 올랐을 때 ‘혹시 더 오르지 않을까’하고 기다렸다 실망한 투자자들이 지금을 환매 기회로 삼고 있다는 설명이다. 환매를 하는 투자자들은 대체로 2007년 코스피지수가 1700~1800일 때 펀드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코스피지수가 1700선에 이르면 환매가 급증하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수가 강한 상승 흐름을 보이면 펀드 수익이 더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환매가 잦아들겠지만, 당장 그런 상황을 기대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펀드 환매 자체도 지수의 강한 상승을 가로막고 있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올 3월과 4월에는 펀드 대량 환매 속에서도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만 한 달에 5조원 넘게 순매수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달 들어서는 22일까지 외국인 순매수가 1조2700억원에 그쳤다.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도 이달 들어 2373억원이 순유출됐다. 국내 펀드와 마찬가지로 2007년에 들어왔던 자금이 원금을 회복해 가는 것으로 해석된다. 메리츠종금증권 박현철 연구원은 “해외보다 한국 주식시장의 매력이 커져 하반기에도 해외 펀드에서는 자금이 계속 빠져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상장사들의 주가수익비율은 8.5배 정도로, 세계 평균(11.3배)이나 아시아 신흥시장(11.1배)보다 저평가돼 있다. 해외 펀드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지난해 말로 없어진 것도 해외 펀드 환매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환매 무풍 지대도=개인들이 펀드 환매를 요청하면 자산운용사는 주식을 팔아 대금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환매 러시 속에서도 자산운용사들이 처분하기는커녕 더 많이 사들이는 종목이 있다. 현대차와 OCI가 대표적이다. 펀드 환매가 부쩍 늘어난 14일부터 22일까지 자산운용사들은 현대차를 680억원, OCI는 666억원 순매수했다. 이 기간 자산운용사들의 순매수 1, 2위다.

현대차와 OCI는 ‘실적 호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차의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OCI는 51% 늘어날 것으로 증권사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증권사들이 예상하는 2분기 영업이익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현대차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한 달 전에 비해 10.4%, OCI는 7.3% 늘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다음 달 2분기에 깜짝 실적을 발표할 수도 있다. 자산운용사들이 대규모 펀드 환매 요구 속에서도 주식을 사들이는 이유다.

교보증권은 이런 점에 착안해 최근 들어 2분기 실적 전망치가 점점 높아지고, 자산운용사들이 순매수하고 있는 종목들을 선별했다. 현대상선·한진해운 등 모두 13개가 뽑혔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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