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란 빛으로 장애의 어둠 걷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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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저자는 자기 자신을 '우주인'이라 부른다. 이유는 우선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일종의 2진법 코드인 '손가락 점자'인데, 그것이야말로 우주적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가 혹시 외계인을 접촉하게 된다면 미 항공우주국에서 시청각 장애인인 자기를 초청할지 모른다고 짐짓 너스레를 떤다.

또 적외선을 보고 전파가 '들린다'는 우주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지구인은 전부 '장애인'이 아닌가. 그러니 장애인의 구분이란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에세이집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의 저자는 9세 때 시력을 잃고 고교 2년 때 청각마저 잃은 40세의 대학 교수. 따라서 이 책은 장애인의 휴먼 스토리다. 저자의 유머 감각과 낙천적인 세계관 때문에 글의 진정성은 배가된다.

저자가 절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다. 빛을 잃기 전에 봤던 스님 머리의 감촉이 너무도 궁금했던 그는 스님께 만져보게 해달라고 간청해 성공한다.

"야, 해냈다. 이것이 스님 머리다! 만져본 감상은 까끌까끌, 울퉁불퉁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눈으로 봤을 때 매끈매끈하고 세속을 초월한 것 같은 인상과는 전혀 다르네. 스님 머리도 인간적 느낌이잖아."(21쪽)

그는 또 전철 안에서 남자 친구와 손가락 점자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호모로 오해받고, 버스 안에서 여자 친구와 '손가락 대화'하다 핀잔도 듣는다.

"이봐, 젊은이들, 버스에 타고 있을 때만이라도 손을 놓으면 어떻겠어." 그나마 외출이 가능했던 건 그에겐 친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6년여 동안 썼던 글들의 모음집이라 통일감이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 말을 되새겨볼 기회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사람들은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인사치레가 아니라 난 정말 온몸으로 느낍니다. 안 보이고, 안 들려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외출 한 번 못하는 내 장애 덕에 그런 주변의 고마움을 늘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덕분에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정수 기자

Note

두 다리는 없지만 휠체어를 타고 유럽 횡단과 우리 국토 종단에 성공했던 박대운(31)씨가 지난해 에세이집 『내게 없는 것이 길이 된다』(북하우스)에서 보여준 유머와 패기가 떠오른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아출판사에서 나온 『오늘은 바람이 무슨 색이죠?』도 일독을 권한다. 선천성 시각장애아 노부유키를 피아노 신동으로 키운 어머니의 이야기 역시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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