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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개방 잠정 합의 내용과 문제점] 한숨 돌렸지만 구조조정은 지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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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경기도 의왕시 농업기반공사에서 열린 '쌀협상 국민 대토론회장'에 전농 회원들이 몰려와 테이블에 의자를 올려놓고 토론회 개최를 막고 있다.[안성식 기자]

'개방 충격은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지만 농업 구조조정은 속도를 내기 어렵게 됐다 '.

정부가 17일 공개한 잠정적인 쌀협상 결과를 분석하면 이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쌀 수입 확대에 따른 단기 충격을 줄이는 게 골자다. 그러나 소비가 점점 줄고 있는 상황에서 수요에 관계없이 외국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또 국산 쌀과 외국 쌀의 경쟁을 통해 쌀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농업 구조조정을 앞당기는 일은 지연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완전개방(관세화) 유예의 득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타결 때까지 일단 미루되 그때 가서 완전개방을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까지 협상 결과는 유예 기간 중 완전개방을 하더라도 의무 수입을 크게 늘리는 등의 추가 부담을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돼 있다.

◆ 재고 부담 급증=1993년 1인당 110.2㎏이었던 연간 쌀 소비량이 지난해에는 83.2㎏로 줄었다. 10년간 쌀 소비가 25% 감소한 것이다. 반면 쌀 재고는 10월 말 기준 710만섬으로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권장하는 재고량인 600만섬 수준을 넘어섰다. 내년 말에는 1000만섬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쌀 재고는 340만섬에 이른다. 현재 쌀 재고의 47.9%가 수입쌀인 셈이다. 의무수입이 늘어나면 이 비중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통상 쌀 100만섬을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보관료와 금융비용, 묵은 쌀의 가치 하락 등을 포함한 직.간접 재고 관리비용은 연간 450억원에 이른다. 내년엔 모두 45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결국 소비자가 세금으로 농민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성진근 충북대 교수는 "지금 의무수입을 늘리는 조건으로 관세화를 미루는 것은 엄청난 재고 부담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95년부터 6년간 관세화를 유예받았지만 의무수입으로 재고 부담을 늘리느니 관세화를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99년 4월 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관세화 이후 일본의 쌀 수입은 거의 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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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 비중을 수입쌀의 10~30%로 한 것도 일단 쌀 수입확대의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값싼 외국 쌀이 한꺼번에 판매되면 국내 쌀값이 떨어져 농가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외국 쌀과 국내 쌀의 경쟁 기회가 줄어들어 국내 쌀의 경쟁력을 키우는 기회가 그만큼 줄었다는 지적도 있다. 내년에 시판할 외국 쌀은 전체 소비량의 0.5% 수준이다.

정부의 향후 대책도 농민소득 보전방안은 명확하지만 구조조정 방안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농민 표를 의식하고 있는 국회가 추곡수매제 폐지와 농지 전용 확대 등을 골자로 한 농정 개혁 법안을 통과시킬지도 미지수다. 정영일 서울대 교수는 "관세화 유예는 불확실성을 줄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 농업에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향후 전망=정부는 의무 수입물량을 기준 연도 소비량의 7%대로 낮추는 데 마지막 협상력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큰 폭의 하향 조정은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농림장관 회담에서 미국 측의 태도가 생각보다 완강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앞으로 협상에서 조건이 더 불리해지지 않는다면 협상 결과를 수용해 완전개방을 미루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부의 최종 방침은 오는 28일 국무회의에서 결정된다.

국책연구기관인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완전개방을 하면 기준연도 소비량의 15.5%까지 수입이 늘어날 수 있지만 국내에서 대응을 잘하기만 하면 4.4%로 억제할 수 있다. 또 관세화를 미루다 3~4년 후 관세화로 전환하면 아무리 많아야 8%, 적으면 5.2% 수준에서 수입을 막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관세화를 10년간 미룰 때 수입량은 소비량의 8%다. 서진교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DDA 협상에서 한국이 개도국으로 분류된다면 완전개방으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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