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패배 사의 … 정정길이 말하는 ‘대통령실장 2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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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대통령실장직을 맡으며 솔직히 힘들고 많이 지쳤다. ‘2년만 젊었어도…’라고 탄식한 게 여러 번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이 실장을 해야 한다. 이제 만기 제대하는 기분이다.”

정정길(68)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2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밝힌 소감이다. 정 실장은 광우병 쇠고기 파동 이후 1기 청와대 멤버들이 줄사퇴한 뒤 취임했다. 23일이면 꼭 2년째다. 하지만 그는 6·2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패배로 끝난 지난 3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현재는 7·28 재·보선 전후에 이뤄질 청와대와 정부의 후속 인적 쇄신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정 실장은 자신의 퇴진 요인으로 작용한 지방선거 패배에 대해 “2년 뒤 있을지 모를 불길한 일(대선 패배)이 없도록 여권 전체가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라며 “어떤 의미에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사의를 표명하고도 왜 빨리 집에 가지 않느냐는 비판이 부담스럽다”는 그로부터 대통령실장 2년 생활을 들었다.

정정길 대통령 실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1주일 뒤인 지난해 6월 1일 지인에게서 받았다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여론 매우 안 좋네요♧심지어는 대선 때 우군도 엠비 지지할 이유가 없다하네요’란 내용이 적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가 가장 어려워”=정 실장은 참모로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를 꼽았다. 보수·진보로 나뉜 나라는 연일 분열 양상이었다. 정 실장은 “우리 잘못도 아닌데 할 수 있는 게 없어 답답했다. 영결식 날 모였던 인파가 무슨 일을 할지 노심초사하며 자정 넘어서까지 TV만 지켜봤다”고 말했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쌓아 올린 지지율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등골이 오싹했다고 한다. 당시 한 지인이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1년이 지난 지금도 보관 중이다. 정 실장은 “아무리 높은 지지율도 한순간에 곤두박질치고,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을 매일 잊지 않으려 1년 동안 이 문자를 지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MB “연말까지만 어떻게든 버티자”=노 전 대통령 서거 후인 2009년 여름 정 실장은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정 실장은 “너무 힘들다. 특히 정책조율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어서 역부족을 느낀다”고 말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국장 전결 사항인 황우석 박사의 연구지원금 연장 문제를 놓고도 대통령실장 주재로 12시간 반 동안 마라톤 회의가 열릴 만큼 청와대로 집중된 정책조율 업무가 큰 부담이었단다. 당시 이 대통령은 “어떻게든 연말까지만 버텨보자”며 만류했다고 한다. 대신 이 대통령은 정책조율을 전담하는 ‘정책실장’직을 신설해 윤진식 경제수석을 겸직시켰다.

◆“대통령 휴가 중 터진 독도 표기 논란”=2008년 7월 27일 미국 정부기관인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암석’으로 표시한 사실이 드러나자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정 실장에겐 가장 긴 하루였다. 전날 이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떠났다. 정 실장을 비롯한 참모들이 안 가겠다는 이 대통령의 등을 떠밀어 보낸 휴가였다. 관저로 배웅 간 정 실장에게 이 대통령은 “어차피 일 터졌다고 빨리 올라오라고 할 것 아니냐”는 농담을 했다. 바로 이튿날 새벽 대형사고가 터진 것. 새벽 6시 면도를 하다 관련 보고를 받은 정 실장은 곧바로 수석회의를 소집했다.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한 뒤에 대통령에게 보고하자’는 게 회의의 결론이었다. 초동 조치를 취한 뒤 대통령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한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10분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와 “라이스 국무장관에게는 전화했느냐”, “백악관에 전했느냐”는 등 속사포처럼 지시를 했다고 정 실장은 전했다.

◆“싸우는 수석들 관리 힘들어”= ‘개성이 강해 자주 충돌하는 수석들을 관리하느라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정 실장은 “이 대통령을 위하는 방식과 생각이 다르니 의견 충돌이 잦았다”며 “수석들 관리는 비효율적인 방법이 정답”이라고 말했다. “갈등이 있는 수석을 한자리에 부르지 않고 따로 불렀다. 각자 불러서 ‘형이 참아야지’, ‘후배가 참아야지’란 식으로 설득했다”고 한다.

◆친박 의원에 감동하기도=정 실장은 경제위기가 닥친 2008년 말 의원들과의 소통에 매달렸다. 그때 만난 의원들이 대략 120명 정도라고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일자리 법안과 예산안의 조기 처리를 위한 설득전이었고 주로 초선의원들이 타깃이었다. 이 대통령은 “순진한 실장이 초선의원들에게 이용당할 것”이라고 부정적이었다. 친박계 초선의원들과의 만찬자리에서 이정현 의원이 벌떡 일어나 “ 예산안 통과에 친이·친박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한 게 가장 고마웠다고 회고했다. 처음에 만류했던 이 대통령도 “재선의원들도 좀 만나지…”라고 은근히 독려했다.

서승욱·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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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대통령실 실장(제2대)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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