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나눔의 문화' 씨앗을 뿌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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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랑의 열매.자선 냄비.사랑의 ARS 전화 모금 등 각종 모금을 합쳐 성금 온도를 표시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탑이 17일 현재 514억원으로 52도를 가리키고 있다. 1998년 캠페인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15일 만에 50도를 돌파하는 등 가파르게 온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서민들의 한숨이 깊어가는 이즈음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모금의 상당액이 기업 기부로 종래 7대3이던 기업 대 개인의 비율이 올해는 9대1로 더욱 격차가 벌어진 까닭이다. 미국 공동모금회 유나이티드 웨이의 경우 개인 대 단체의 비율이 7대3이다. 미국 가정의 89%가 지원봉사를 위한 각종 기부금을 내고 있고, 그 액수는 가구 수입의 3.1%에 달한다고 한다. 기업의 뭉텅이 돈보다 수많은 개미군단의 고사리 성금이 기부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소수의 고액 성금에 좌우되는 기부문화는 나눔의 문화로 성장하기 어렵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기 위해서는 적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런 공동체 의식 대신 외부 눈치나 책임감 때문에 기부가 이뤄진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나눔의 문화를 키워 나가는 것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이웃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세밑이야말로 가족 구성원이 사랑 나누기에 참여할 수 있는 적기다. 주위를 둘러보면 끼니를 거르는 노인이나 어린 학생이 적지 않다. 신체적 장애와 가난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견뎌야 하는 장애인들도 있다. 타국에서 외로움과 차별을 견디며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조선족 동포도 있다. 이들이 쓸쓸하게 세밑을 보내지 않고 따스한 이웃의 온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기부는 생활에 여유가 있거나,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콩 한쪽도 열 사람이 나눠 먹는다'는 옛 선인들의 지혜를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