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처형 사진'에 의문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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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 11일 국내에서 '만밀대일기(滿密大日記)'와 함께 최초로 공개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1908~32)의사의 처형 장면 사진(본지 4월 11일자 29면)을 놓고 학계 일각에서 몇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진을 사전에 검토한 독립운동 전공 학자들이 제기한 의문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일본 방위청 자료실에서 발굴·공개한 이번 자료에서 문서와 사진이 다른 종류의 자료라는 것. 또 하나는 수형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즉결처분의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이다.

이에 이번 자료를 공개한 '더 채널'의 김광만 대표는 '사진이 문서의 제일 뒤쪽에 붙어있으나 복사하는 과정에서 사진 부분과 글을 따로 처리하면서 일어난 일'이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만밀대일기'는 윤의사 처형 이듬해인 33년에 일본 육군성이 작성한 극비 보고서로 총 40여쪽이다.

그러나 윤의사는 실형을 산 이후 사형을 당해 수형복이 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1932년 4월 29일 체포 후 5월 25일 상하이(上海)에 있는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12월 19일 일본 가나자와(澤) 감옥 변두리 공병 작업장에서 형틀에 매여 총 두 발을 맞고 숨졌다.

이와 관련, 윤병석(尹炳奭) 인하대 명예교수는 "윤의사의 친동생인 윤남의(尹南儀·86)옹이 이번 사진을 검증하면서 윤의사가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하면서도 "사진과 문서가 어떤 상태였는지에 대해선 김광만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윤의사 사진 진위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99년 5월 당시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 근무한 강효백 박사는 상하이 홍커우(虹口)공원 거사 당시 체포·압송되고 있는 사진 속의 인물이 제3의 인물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윤의사는 25세였으나 사진 속의 인물은 35~50세로 보이며 ▶거사 직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군의 폭행으로 정신을 잃고 진흙탕에 쓰러졌다는 당시 상하이 타임스의 보도와 달리 모자를 들고 끌려가는 등 옷차림이 너무 말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근대사를 연구하는 한 학자는 "체포 당시 사진의 진위와 함께 이번 사진의 옷이 거사 당시 입었던 것인지를 밝히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번 사진이 진짜일 가능성은 크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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