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제2전선 형성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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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세가 3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에서는 헤즈볼라 게릴라와 이스라엘군이 충돌하고 있다. 양측의 충돌은 지난 2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지역에 카튜샤 로켓포 공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군이 장악하고 있는 남부 레바논 셰바농지(農地)를 대전차 미사일과 박격포로 공격했고, 이스라엘군은 전투기를 동원해 베카계곡의 헤즈볼라 근거지를 맹폭했다.

헤즈볼라의 이번 공격은 2000년 5월 이스라엘군이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한 이래 이스라엘에 가한 가장 강도 높은 공격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로 경황이 없는 틈을 타 '제2전선'을 구축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레바논-시리아 국경에 위치한 면적 10㎢의 셰바농지를 둘러싸고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셰바농지는 레바논 영토이므로 이스라엘군은 여기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 헤즈볼라측 주장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셰바농지가 1967년 제3차 중동전 때 이스라엘이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고원에 속하는 땅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군이 계속 주둔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레바논이 내전 중이던 75년 아랍평화유지군 자격으로 레바논에 군대를 파견한 이래 아직도 3만명의 군대를 레바논에 주둔시키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리아는 셰바농지가 레바논 영토라면서 헤즈볼라를 부추기고 있다.

헤즈볼라는 무장투쟁으로 이스라엘군을 몰아냈다는 자부심과 이란과 시리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에 대해 적극 공세를 펴고 있다. 그동안 군사력 증강에 주력해 미사일 등 무기를 대량으로 도입해 이스라엘 접경지역뿐 아니라 국경에서 40㎞쯤 떨어진 하이파까지 공격이 가능하다. 82년 이스라엘군의 제2차 레바논 침공 직후 이슬람 시아파(派)를 기반으로 결성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로부터 레바논을 완전 '해방'시키고 이란과 같은 이슬람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레바논 정치에서 기독교 마론파,이슬람 수니파에 이어 3위의 세력권을 형성해온 시아파는 전체 3백만 인구의 40%까지 숫자를 크게 늘리는 한편 이스라엘군 철수라는 군사적 성과를 앞세워 세력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과 함께 사회복지 활동에도 힘쓴 결과 국민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헤즈볼라는 대(對)이스라엘 투쟁에서 팔레스타인과 공동전선을 펴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남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벌였던 '비대칭전쟁'을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따라야 할 모델로 인식하고 있다. 이와 함께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의 주요 무기 공급원이기도 하다.

군사력으로 보면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큰 위협이 아니다. 하지만 완전 소탕은 어렵다. 22년간의 남부 레바논 점령은 이스라엘로서 깊은 '수렁'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또 다른 전선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헤즈볼라의 배후에 이란과 시리아가 있음을 고려할 때 대규모 지역전쟁으로 발전할 위험성도 있다.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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