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행에 생기찾은 대우車 부평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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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입니다." 10일 오전 부평 대우자동차 조립1공장. 컨베이어에 실려 오는 라노스 머리 부분에 라디에이터 그릴을 장착하는 강희원(40)씨의 팔에는 힘이 넘쳤다. 1998년 초 회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한 뒤 4년여만에 처음으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姜씨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예상보다 빨리 부평공장을 인수할 수 있다는 보도를 접한 동료들의 얼굴이 모처럼 환해졌다"고 말했다.그는 "공장 화단에 활짝 핀 라일락이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것을 오늘에야 느꼈다"면서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대우차 매각 본계약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주력인 부평공장이 침체에서 벗어나 활기를 띠고 있다.

GM은 지난해 9월 양해각서(MOU)체결 때 부평공장을 인수대상에서 제외한 채 6년간 위탁생산한 뒤 상황을 봐가며 인수할 수 있다는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왔다.노사분규가 극렬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다가 생산성과 가동률 등에서 GM이 제시하는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인수시기를 앞당기는 쪽으로 방침이 바뀐 것이다.

차체2부 우영문(44)씨는 "회사가 어려운 처지에 빠진 뒤 회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며 "일거리가 넘쳐 잔업하는 날이 하루 바삐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부평공장은 활기를 잃었고 직원들은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직전에는 30만평의 공장이 7천여명의 직원들로 북적댔으나 지금은 3천8백명 뿐이다. 1천7백여명이 정리해고됐다. 2교대로 분주하던 공장은 1교대로 바뀌었고, 그나마 공장은 매주 월~수요일 3일만 가동된다.

하루 8시간 근무원칙도 철저하게 지켜진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감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라인의 직원 채용도 중단돼 95년 입사자가 7년째 막내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당연히 직원들의 월급봉투는 얇아졌다. 15년 경력 생산직 사원의 월급이 1백50만~1백60만원에서 8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생계유지가 어려워 일부 직원들은 쉬는 날 공사장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회사가 있는 청천동 일대의 술집·식당은 퇴근시간 이후에도 손님의 발길이 끊기면서 매상이 급감했다.

禹씨는 "아이들이 왜 3일만 출근하느냐고 물을 때가 가장 난처했다"며 "경영이 정상화돼 가정생활이 제대로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한익수 공장장은 "매각 협상이 마무리되고 공장가동이 정상화하면 대우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노사가 서로 지키기 힘든 것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켜 놓았으나 이번에 대부분 개정하기로 합의해 노사분규의 불씨를 없앴다고 설명했다.

타 지역 공장에 인력이 부족해 부평공장 직원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노조와 합의하도록 한 것 등을 예로 들었다.

직원들이 회사를 집처럼 생각하는 주인의식으로 무장하게 된 것도 눈에 보이지 않은 소득이다.

그는 "회사가 부도난 뒤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온갖 서러움을 견뎌왔습니다. 직원들이 공장의 구석구석을 스스로 청소하는 등 인식의 변화가 눈에 띌 정도"라고 설명했다.

대우차는 현재 10%대인 시장점유율을 25% 선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5월중 1천2백~1천6백㏄ 소형차 칼로스를 출시하고 하반기엔 누비라 후속모델(J-200)을 내놓아 시장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韓공장장은 "품질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부평=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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