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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다시 '좌향 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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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사상에 따라 분권지향의 서방 민주정치의 논리를 거부해야"(9월 15일)

"국내 출판매체들이 서방의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대중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11월 11일)

'공공(公共)지식분자의 사조(思潮)를 경계해야'라는 기사로 중국 현실을 외면한 지식인과 언론의 보도 경향에 경종.(12월 14일 광명일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이 옛 사회주의로 회귀하는 보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200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에 오르면서 4세대 지도부의 출범을 이끌어왔다. 그동안 '국민에게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가는 이른바 '친민(親民)' 이미지를 구축했다.

인권과 복지를 강조하고 언론에 대해서도 통제가 아닌 방임정책을 취했었다. 중국사회의 개방이 가속화될 것이란 기대를 부르는 행보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달라졌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강조했다.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첫 신호는 지난 9월 15일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50주년 기념 석상에서 나왔다. "분권(分權)을 통한 견제를 추구하는 서방식 민주정치를 마르크스 레닌주의 등에 입각해 거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흘 뒤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4中全) 폐막식에선 더 강하게 나왔다. "국내 언론들이 자산계급의 인권과 언론자유 등의 자유화 관점을 퍼뜨리고 있다"며 "언론매체에 대한 관리를 통해 이러한 잘못된 관점이 전해지지 않도록 통로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언론매체와 이데올로기를 총괄하는 공산당 선전부가 나섰다. 선전부는 11월 각 성(省)의 언론 담당 기관에 문건을 시달했다. "서방의 적대세력들이 모든 수단을 통해 일반인들의 사상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언론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막는 데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유주의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일부 유명 작가와 경제학자 등을 정식으로 거명하면서 비판했다.

선전부는 아울러 29개 항목의 보도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최근 중국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농민들의 상방(上訪:억울한 일로 상급 기관에 투서하는 행위)이 여기에 포함된다. 토지를 둘러싼 대규모 분규, 관공서와 민간의 충돌 등도 대상이다. 예외적으로 중국청년보가 상방 사례를 심층 보도한 최근 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당의 직접 관할을 받는 광명일보나 인민일보 등은 자유화 분위기를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광명일보의 지난 14일자 '공공(公共) 지식분자의 사조(思潮)를 경계해야' 기사. "지식인은 서방식의 자유주의적인 사고에 편향돼 중국사회의 발전 방향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北京)과 홍콩 등지의 중국 관측통들은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부에선 "후 주석은 군사위 주석직을 장쩌민(江澤民)에게서 물려받기 전까지 '친민'이라는 이미지로 세를 불려왔다"며 "이제 군사위 주석을 차지하고 권력의 정점에 선 마당에 이를 정리하고 원래의 보수적인 모습으로 돌아선 것"이라고 분석한다.

다른 관점도 있다. "빈부격차와 이권에 눈을 뜬 일반 국민으로 인한 대규모 분규, 이로부터 생겨나는 사회적 갈등이 적정 수준을 넘어선 데 대한 중국 최고 지도자의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지도부의 보수 회귀는 그만큼 중국이 지닌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도 해석한다. 일부에서는 "전체적으로는 중국의 국가.사회 발전과 역행하는 조치여서 부작용이 만만찮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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