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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석 되살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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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9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 대회의실.

당원 A씨:"개혁도 안 되고 경기도 나쁘다. 정부를 못 믿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 마인드와 이 부총리의 코드가 안 맞아 소신껏 (일을) 못한다는데…."

이헌재 경제 부총리:"코드가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는데 경제 정책 운용하는 데 대통령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분 생각보다는 대통령이 실용주의적이다."

당원 B씨:"참여 정부의 경제철학이 뭐냐."

이 부총리:"사회적 통합을 유지하고 기회를 최대한 확보하면서 개방과 경쟁을 최대화하는 시장경제의 추구다. 이 점에서 대통령과 큰 차이가 없다. 정책 선후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궤를 같이 한다."

이 부총리와 열린우리당 서울시 당원들이 주고받은 대화다. 요컨대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지 않으며, 다만 정책 선후를 놓고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일반 국민은 '코드' 따위엔 관심이 없다. 피부로 느끼는 건 경제 정책이다. 코드는 같으나 정책에 대한 생각은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우습다. 최근 난맥상을 보인 부동산 정책이 좋은 예다. 이 부총리는 결과적으로 책임지지도 못할 얘기를 거론해 혼선을 자초했다. 보유세 부담이 늘어나니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에게 팔 기회를 주기 위해 양도세 중과를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정우 청와대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반기를 들었고 그 후 투기를 잡겠다는 명분과 부동산 경기의 급랭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론이 첨예하게 맞섰다.

대통령은 이 부총리에게 정부의 입장을 정리하도록 맡겼지만, 결론은 '예정대로 시행' 쪽으로 났다. 이 부총리의 말을 믿고 주택 매각 시기를 늦춘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심리적 파급 효과도 컸다.

이 제도 자체가 아주 중요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일관성이 없고 이념에 따라 흔들리는 현 경제팀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부총리가 경기 부양을 위해 230개 골프장 건설을 조기 허용하겠다고 말하자 이 위원장은 환경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개혁 추진'이란 명분도 좋다. 하지만 수렁에 빠진 경제를 건져 놓고 이념 논쟁을 벌여야 할 것 아닌가. 좌(左)면 어떻고 우(右)면 어떤가. 경제 성장을 일궈 길거리에 넘쳐나는 실업자를 구하는 일이 우선이다. 청와대 경제팀의 일터는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냉엄한 경제현장이다. 똑같은 신문(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대고 부총리와 금감위원장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다.

금감위원장이 "국내 은행의 외국인 이사 수를 전체의 절반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이 부총리는 이틀 뒤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했다.

이래선 안 된다. 부총리에게 전권을 주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예전엔 경제 부총리면 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이면 수석에게 힘을 실어 줬다. 지금은 누가 실세인지, 어디서 정책이 결정되는지도 헷갈린다. 차제에 '코드'는 제쳐 두고 능력있는 경제수석을 임명하자. 문제 있을 때 부총리가 좌장이 돼서 경제수석과 조율하고, 이를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식의 '조정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처럼 위원회와 사공이 너무 많아 조율이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 경제는 멍든다.

"외환위기 때는 정부가 뭘 하려고 하는지 분명했기 때문에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경기가) 좋아지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이 부총리는 어디 가셨나."

요즘 주변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부총리가 답할 차례다.

박의준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