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언어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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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 대선과 지방선거의 또 다른 현장인 사이버 공간이 추잡하게 일그러지고 있다. 요즘 여야 후보들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은 특정 후보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근거없는 비방을 담은 글들로 차 있다. 국민경선 열기에 휩싸여 있는 민주당은 이같은 사이버 테러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이미 김중권 후보는 경선 포기에 앞서 자신의 사퇴를 강요하는 네티즌 공세로 몸살을 앓은 바 있다. 노무현-이인제 후보의 공방에서도 이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李후보 측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이인제 습격대'를 만들자는 등 사이버 테러를 저질렀다고 비난했고, 盧후보 측에선 "이는 사이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이처럼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사이버 테러는 기자들의 e-메일을 들여다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자기편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암에 걸려 죽어라''밤길 조심하라''죽일 ×들' 등 네티즌의 얼굴없는 언어 폭력이 쏟아지고 있다.

사이버 테러의 심각성은 우리 정치 문화를 황폐화시키는 데 있다. 익명성에 숨은 일부 네티즌이 정치 수준을 진흙탕 정쟁으로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질·욕설의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네티즌들이 오프 라인으로 나왔을 때 그 버릇을 버릴 수 있느냐 하는 측면에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문제는 망망대해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형편없는 욕쟁이 네티즌을 추적하기가 힘들다는 데 있다. 올 들어 사이버 관련 선거법 위반으로 중앙선관위가 적발한 것은 4백93건(구속 3명)이지만, 이는 비방성 사이버 테러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경찰과 선관위의 단속에 한계가 있는 만큼 대선·지방선거 후보들은 각자의 지지 네티즌들과 함께 인테넷 공간을 자정하는 데 나서야 할 것이다. 온 라인에서 벌어지는 '더러운 정치'를 퇴치하지 않고서는 오프 라인에서의 국민경선이란 '새 정치'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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