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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 검찰, 수갑 찬 피의자 팔 꺾는 경찰 CCTV 화면 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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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화면 속에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피해자 맞습니까.”

“어, 내 모습이 찍혔네요….”

지난달 서울남부지검의 한 조사실.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피의자로 조사를 받다가 고문을 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A씨는 검찰이 내놓은 폐쇄회로TV(CCTV) 화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2월 26일 양천서의 한 조사실에서 취조를 당하는 장면이었다. CCTV 화면에는 경찰관이 A씨에게 등쪽으로 수갑을 채우고 팔을 위로 꺾어 올리는 이른바 ‘날개 꺾기’를 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이 같은 증거를 확보한 서울남부지검은 20일 특수 절도 등 혐의 피의자 20여 명을 고문한 의혹이 제기된 서울 양천경찰서 경찰관 5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추궁했다. 경찰관들은 “고문이나 가혹 행위라고 할 만한 폭행은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일부 물리적 행위가 있었더라도 피의자들이 저항하거나 자해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르면 21일 독직폭행 등 혐의로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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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로 공개된 양천경찰서 피의자 고문 의혹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인권위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별도의 내사를 벌여온 서울남부지검의 수사가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인권위 발표 이전인 지난 4월 7일 양천경찰서의 CCTV 하드디스크를 압수해 조사를 벌여 왔다. 그러나 검찰이 확보한 CCTV 증거는 극히 일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정을 제기한 피해자들이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한 지난 3월 9일부터 4월 2일까지 25일간의 CCTV 화면에는 아무런 내용이 녹화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문이 벌어진 것으로 의심되는 양천경찰서 강력5팀 사무실을 비롯해 양천서에 설치된 CCTV 30대 모두 25일간 녹화 기록이 누락된 것이다. 녹화가 안 되기 시작한 3월 9일은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피해자 3명이 양천서에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날이다. 4월 2일은 검찰이 양천서 경찰관들의 가혹 행위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뒤 수사에 착수한 날이다.

검찰 관계자는 “CCTV 기록은 통상적으로 매달 1일부터 말일까지 한 달 단위로 저장되는데 하필 그 기간의 영상만 빠졌다는 게 이상하다. 조작이 의심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양천서가 조직적으로 CCTV 기록을 없앴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지난 2월 찍힌 영상을 확보했다. 남부지검 관계자는 “다른 증거 영상이 남아 있는지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 센터에 녹화 기록 분석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양천서 관계자들이 ▶고문 장면이 담긴 CCTV 녹화 기록을 삭제했는지 ▶고문을 위해 CCTV 촬영 방향을 천장 쪽으로 돌렸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 또 양천서장 등 이 경찰서 상부에서 가혹행위를 지시했는지, 이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은폐하려 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이에 대해 양천서 관계자는 “CCTV 유지·보수 업체에 따르면 CCTV가 고장을 일으켜 녹화만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도 녹화가 누락된 원인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조직적 은폐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우리도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 “고문 개연성 있다”=경찰청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분위기다. 인권위 발표 이후 자체 감찰 조사를 벌였고, 양천경찰서장을 교체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가혹 행위가 있었던 정황은 인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권위에서 파악한 피해자 22명 중 무작위로 고른 4명으로부터 일관되고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임모(33)씨의 변호인인 김정범 변호사는 “은밀히 이뤄지는 고문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증거는 피해자들의 진술”이라고 말했다.

강기헌·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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