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가격·부품까지 비슷 … 국산차·수입차 뭘 사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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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차와 수입차 사이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수입차의 품질과 성능, 안전성은 국산차를 뚜렷이 앞섰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국산차의 상품성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가격 차이도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 결과 예전 같았으면 해외에서나 맞붙었을 국산차와 수입차가 안방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게 됐다.

현대 쏘나타 F24 GDI와 도요타 캠리 2.5가 좋은 예다. 출력과 토크, 공인연비 등 제원으로 드러난 성능 에서 쏘나타가 캠리를 앞선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의 충돌테스트 결과는 둘 다 전 항목 최고등급. 근소한 차이의 경쟁은 가격에서도 이어진다. 쏘나타 2.4 최고급형에 풀 옵션을 고를 경우 3340만원. 캠리보다 150만원 저렴할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국산차지만 실질적 내용은 수입차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 닛산과 친척뻘인 르노삼성이 대표적이다. SUV인 르노삼성 QM5와 닛산 로그, 세단인 르노삼성 SM5와 닛산 알티마는 뼈대를 공유한다. 르노삼성 SM7과 닛산 알티마의 엔진은 둘 다 닛산의 VQ 시리즈로 그 뿌리가 같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밑바탕과 핵심기술이 같은 이란성쌍둥이인 셈이다.

GM대우가 올 하반기 선보일 준대형 세단 알페온도 비슷한 경우다. 이미 미국에서 판매 중인 뷰익 라크로스와 같은 차다. 엔진은 캐딜락 CTS와 함께 쓴다. 사실 GM대우의 차종은 이미 국산·수입차의 구분이 유명무실해졌다. 라세티 프리미어와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해외에서 시보레 크루즈와 스파크로 팔린다. GM대우는 시보레 카마로도 들여와 팔 계획이다.

업체 간 기술제휴로 함께 쓰는 부품이 많아진 것도 국산·수입차의 변별력을 흐리는 요인이다. 쌍용 체어맨 W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뼈대와 엔진, 변속기,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쓴다. V8 엔진은 2006년까지 벤츠 S 500에서 쓰던 것과 같다. 7단 자동변속기는 현재 벤츠가 쓰는 7G-트로닉과 소수점 단위의 기어비까지 포개진다. 핵심기술은 영락없는 벤츠다.

해외 공인기관의 충돌테스트 결과 또한 ‘수입차는 안전하고 국산차는 불안하다’는 기존의 이분법적 선입견을 허물고 있다. 기아 쏘울과 쏘렌토R은 유로 NCAP(유럽 신차평가 프로그램)의 종합평점에서 별 다섯 개 만점을 기록했다. 라세티 프리미어 또한 같은 테스트에서 만점을 기록했다.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벤츠 스마트와 같은 별 네 개를 받았다. 수입차 가운데 별 네 개의 차종도 수두룩하다.

수치로 드러난 성능이 동급 수입차를 앞서는 국산차도 등장했다. R 디젤 엔진을 얹은 현대와 기아차가 대표적이다. 최고출력이나 최대토크 모두 비슷한 배기량의 폴크스바겐이나 푸조 엔진을 앞선다. 그러면서 연비는 비슷하다. 그만큼 효율이 더 뛰어나다는 뜻이다. 현대·기아차의 2.4L GDI 엔진도 동급 수입차의 엔진과 비교해 손색없는 성능을 뽐낸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양분하던 가격 장벽 또한 서서히 얇아지고 있다. 국산차는 고급화를 이유로 가격을 꾸준히 높여 왔고, 수입차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가격을 낮춰왔기 때문이다.  김기범

자동차 저널리스트 (중앙SUNDAY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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