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 애니-공각기동대-이정우·한젬마의 '리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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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영어명 Ghost in the Shell)가 12일 개봉된다. 1995년작이니까 7년 묵은 구작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과 혼을 부르는 듯한 음악 속에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관계'라는 묵직한 철학을 녹여낸 이 작품을 두고 '전설'이라 부른다.

오시이 마모루(押井守·51)라는 이름을 세계 영화사에 각인시킨 '공각기동대'에 대해 혹자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에 대한 일본의 대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속에서 철학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이정우(43)철학아카데미 원장과 TV프로그램에서 미술해설가로 활동 중인 한젬마(32)씨가 이 작품에 보이는 애정은 각별하다. 이들은 '제5원소''매트릭스''바닐라 스카이' 등 많은 영화에 영감을 준 '원조'를 큰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원장은 "육체의 많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되고 복제인간 탄생이 머지않은 지금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사회를 그린 영화들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대부분 암울하게 전망한 반면 이 작품은 긍정적 면에 많은 점수를 주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말했다.

한씨가 "오시이는 '기억이 조작된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있는 기계를 기계라 부를 수 있는가'하고 묻는 것 같다. '내가 나'라는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묻자 이원장은 "내면화된 기억이나 관념, 경험은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기억들이 외화(外化)되어 겉으로 드러날 경우를 전제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기억이 조작된 '인형'에 불과해진 사람들과 스스로 정보를 얻고 생각할 수 있게 된 프로그램을 등장시켜 '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사유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고스트'라는 말은 철학 용어이기도 하다. 이원장은 "데카르트는 '육체(껍데기, 곧 shell)와 혼(ghost)은 둘이 아닌 하나'라고 주장했지만 이 영화는 그에 대한 반박이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었다는 이분법을 전제하는 이 작품은 첨단사회를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통적인 귀신 영화다. 몸은 없고 혼만 있는 귀신이 사랑을 하고 육체를 얻으려고 떠도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원장은 또 "DNA라는 기억시스템을 통해 인간은 인간이 되는 것이며, 컴퓨터가 그런 기억시스템을 조절하게 됐을 때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한다는 인형사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한씨는 "영화를 보면서 기계가 우리들 내면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요즘 스케줄은 컴퓨터에, 전화번호는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다. 그것이 없어지면 나의 많은 부분도 같이 사라지는 게 아닌가. 기계에 종속되기 시작한 인간의 미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가능성만 있으면 그것을 어떤 기술로든 실현시키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구사나기의 말은 인류가 문명을 만들어온 원동력이기도 했다"라고 지적한 이원장은 "첨단기술을 특정 권력이 독점하느냐 아니면 모든 대중들이 향유할 수 있느냐에 따라 미래는 디스토피아일지 유토피아일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전체적으로 고독하고 암울한 이미지를 주는 푸른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그 속에 흐르는 붉은색과 연두색은 희망의 메시지로 읽힌다. 새로운 운명이 펼쳐지는 미래사회에 대한 오시이식 기대가 아닐까"라고 말을 받았다.

인터넷이 지구촌을 휘감고 현실과 가상현실과의 구분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 오늘날, 오시이 감독이 최근 '공각기동대2'제작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그가 얼마나 확장된 인식의 지평을 보여줄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

글=정형모,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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