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무력 도발 누를 소프트웨어의 매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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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호 35면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또 한번 심한 무력감을 경험하고 있다. 북한이란 ‘적’의 도발 앞에서 국론은 분열되어 있다. 어느 시민단체는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편지를 유엔에 보냈고, 국회는 관련 결의안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은 이번만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에 대한 보복이나 응징은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다. 서해상에서의 한·미 해군합동훈련이 무기한 연기된 것은 물론이고 대북 심리전 방송을 재개하기 위한 확성기 설치 역시 흐지부지 넘어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보수진영에서는 분통을 터뜨린다. 일각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을 의식해 북한의 눈치를 살핀다는 ‘설’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냉철하게 따지고 보면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고서야 우리가 북한을 무력으로 응징할 방법은 없다. 이는 하나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60∼70년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 육영수 여사 저격, 버마 아웅산 테러, KAL 여객기 격추 등 천안함 격침과 유사한 도발을 북한은 수없이 자행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속 시원히 ‘보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미국 역시 68년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을 겪으면서도 북한에 대해 무력응징을 하지 못했다. 푸에블로호 선원들은 피랍 1년 후에나 풀려났고 배는 아직도 평양 대동강변에 전리품처럼 전시돼 있다. 미군 두 명이 살해된 도끼 만행사건 후에도 미국은 기껏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내고 북한군 초소를 파괴하는 정도로 반응한 게 고작이었다. 북한의 무력도발은 상존하는 현실이며 우리가 무력보복을 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 이를테면 우리 존재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우리의 소프트 파워를 키워 나가야 할 따름이다.

소프트파워란 상대방을 설득하고 매료시킴으로써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힘을 말한다. 무력 보복이나 경제 제재와 같은 ‘하드파워’와 달리 소프트파워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관의 보편성,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우리 경제체제의 수월성(秀越性)과 형평성 등을 통해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좋아하고 따라 하고 싶어하고 옹호하도록 만드는 힘을 말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둬왔다. 천안함 사태 이후 미국 상·하원은 물론 유럽연합(EU), 미주 기구 등이 대북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우선적으로는 북한의 비(非)이성적인 도발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이 쌓아온 명성, 그리고 우리의 성취에 대한 국제사회의 존경과 인정의 발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이제 수많은 개발도상국가의 학습모델로 떠오르면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북한이 아무리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도발을 자행하더라도 우리 체제의 보편성과 타당성을 바탕으로 한 소프트파워를 이길 방법은 없다.

우리가 북한의 거듭되는 만행에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은 북한이 무서워서도, 우리의 힘과 실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가 피땀 흘려 일군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 그리고 그 속에서 날로 번영하고 있는 민족공동체를 지키기 위함이다.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북한의 허무한 도발이 자칫 융성하고 있는 국운을 해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3대 세습으로 체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북한의 도발이 더욱 잦아지고 거칠어질 것은 자명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편으로는 더욱 강력한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 이 부분을 개선하고 강화할 여지가 있음은 이번 사건을 통해 만천하에 밝혀졌다. “말은 부드럽게 하되 큰 몽둥이를 들고 다녀라(Speak softly, but carry a big stick)”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말은 우리가 절감해야 할 명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체제를,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고 매력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고 이 작업은 국제무대에서보다 국내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국민 모두가 대한민국 체제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이념과 정파를 떠나 이를 옹호하고 싶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의 각성과 분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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