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겨울에 울고 웃는 업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빈 그물만 끌어올리려니 속이 터집니다."

요즘 충북 대청호에서 빙어를 잡는 어민들은 온통 울상이다. 빙어는 통상 호수에 얼음이 얼기 시작할 무렵 수면 근처로 올라오기 때문에 수심 2~5m에서 잡힌다. 그러나 올해는 호수의 수면 부근 온도가 예년보다 7도나 높은 12도 안팎이어서 빙어를 구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빙어잡이를 전문으로 하는 옥천군 영어조합의 경우 하루 어획량이 30㎏에 불과하다. 예년의 30%선이라고 한다. 잃어버린 겨울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경남 사천에서는 갯벌 등에서 사는 '개불'채취량이 크게 줄었다. 개불은 수온이 10도가량일 때 잘 자라지만 요즘 수온이 높아 제대로 못 자라고 있다.

반면 겨울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화색이다. 2000여평의 비닐하우스를 가진 농민 이철선(59.전남 강진)씨는 "난방비용이 30% 정도 줄 것 같다"고 기뻐했다.

◆ 레저업체 희비 엇갈려=강원도에서는 지난달 18일 용평리조트를 시작으로 지난 9일 강촌리조트까지 6개 스키장이 모두 개장했으나 눈이 없어 고작 1~5개의 슬로프만 열어놓고 있다.

용평리조트는 평소 12월 중순이면 슬로프 28개 중 절반은 열었으나 올해는 5개 슬로프만 운영 중이다.

회사 측은 고객 불만을 무마하는 차원에서 리프트 요금을 20% 깎아주고 있다. 지난달 20일 개장 예정이었던 알프스리조트(8개 슬로프)는 지난 8일 슬로프 1개만 개장해 손님을 맞고 있다. 성우리조트와 보광휘닉스파크도 3~4개의 슬로프만 열고 근근이 스키장을 운영 중이다.

반면 추운 날씨 때문에 통상 겨울철에는 매출이 크게 줄었던 골프장은 거꾸로 호황이다. 강원도 속초 설악플라자CC의 경우 이달 들어 영상 10도(낮 기온) 안팎의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주말이면 이용객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매출액이 15%가량 늘었다.

원주 오크밸리 골프장도 주말과 휴일에는 300여명, 평일에는 170여명이 찾아오고 있다. 오크밸리 관계자는 "내장객이 30%가량 늘어나 주말과 휴일의 경우 일주일 전에 예약이 모두 끝난다"고 했다.

국내에서 겨울철에 눈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지역으로 매년 12월부터 부킹 '전쟁'이 벌어지던 제주도는 울상이다. 다른 지방이 따뜻한 날씨를 유지하면서 제주도를 찾는 골퍼들의 행렬이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 겨울용품 업계 울상=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에 따르면 겨울 코트 매출이 지난해보다 20~40% 감소했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지난 9월에 '이번 겨울은 추울 것'이라는 기상 예보가 나와 물량을 많이 준비했다"면서 "재고만 늘어 싼값에라도 물건을 팔아 치워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은 막바지 코트 판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1월에 열리는 겨울 정기세일에서 올해 신상품 코트를 50~60% 싸게 판매할 계획이다. 롯데백화점도 연말까지 특가 기획전을 열고 겨울의류를 30~50% 할인 판매한다.

스키용품의 매출은 확 줄어든 반면 겨울이면 판매가 뜸해지는 등산용품은 매출이 껑충 뛰었다. 신세계 이마트의 경우 등산용 셔츠와 재킷의 매출이 이달 들어 지난해보다 각각 41%, 22%씩 늘어난 반면 스키 및 의류 매출은 10% 줄었다.

스노 체인과 히터 등 방한용품의 매출도 뚝 떨어졌다. 한 홈쇼핑업체는 스노 체인.서리 방지용품 등의 첫 방송을 12월 초에 내보낼 예정이었으나 내년 1월로 연기했다. 하이마트 양동철 대리는 "히터 매출은 20%, 전기장판은 10%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반면 빙과.스포츠음료 매출은 오히려 늘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이달 중순까지 빙과류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늘었다. 빙과류는 여름에 잘 팔리는 전형적인 '더위 상품'. 갈증해소용 이온음료의 매출은 15.6%, 생수 매출은 20%가 신장했다는 것이다.

◆ 질병 패턴도 달라져=식품의약품안전청은 최근 "올 겨울 날씨가 유난히 따뜻해 식중독.이질 발생이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말 충북 충주 모 초등학교에서 156명의 세균성 이질환자가 집단 발병한 데 이어 이달 초 부산 모 고등학교에서도 55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겨울철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에 살다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지하집모기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있다. 질병본부 의동물과 이원자 연구관은 "지하집모기를 잡기 위해 도심의 정화조나 초등학교 급식장 하수도에 집중적인 방역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에선 모기가 극성이다. 제주시 연동의 K약국 약사 김모(44)씨는 "예전엔 11월께면 모기약을 치웠지만 올해엔 그대로 두고 있다"며 "하루 2~3개씩은 꾸준히 팔린다"고 말했다.

겨울철에 공기가 건조해지면 건선.아토피 등 피부질환의 증세가 심해지는 게 보통이지만 올해는 피부질환의 증세가 덜할 것으로 보인다.

강갑생.홍주연 기자, 전국팀<kkskk@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