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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 진달래가 어서 오라하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진달래는 수줍은 듯 숨어 숨어 꽃눈을 맺고 훈훈한 봄 바람에 슬며시 꽃망울을 터뜨린다. 연분홍 꽃잎은 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매화·벚꽃처럼 요염하지 않고, 개나리처럼 화사하지도 않다. 우아한 맛은 목련을 따라가지 못한다.

뭇 봄꽃들이 상춘객들의 칭송을 받으며 자태를 자랑할 때, 진달래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죽하면 진달래의 별명이 '부끄럼보'일까.

국내 최대의 진달래 군락지인 전남 여수시 삼일동 영취산(鷲山)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신록이 미처 퍼지지 않은 산에 진달래가 온 산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여 버렸다.

'영취산 진달래 축제'(5~7일)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예년보다 이른 꽃소식 덕에 지난 주말 절정을 이뤘다. 하지만 오는 20일께까지 장관을 이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산객에게는 '흥국사~봉우재~정상(일명 영취봉·5백10m)~4백50m봉~상암초등학교'코스가 가장 보편적인 등산 코스다. 흥국사(興國寺)는 1195년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4백명이 활약했던 호국 불교의 성지다.

등산로는 흥국사를 오른편에 끼고 시작된다. 봉우재까지는 1.8㎞. 등산로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정겹지만 아직 분홍 기운은 비치지 않는다.

완만한 경사를 계속해 30여분 올랐을까. 영취산 중턱의 고갯길 정상인 봉우재에 오른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그리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연분홍 빛 산사태, 아니 꽃사태다. 봉우재에서 4백39m봉까지 이어진 능선은 등산로를 제외하고는 온통 붉게 물들었다. 등산로로 접어들면 어른 키보다 높이 핀 진달래가 사방을 가로막고 진달래 터널을 이룬다.

어느새 사람들도 진달래를 닮는다. 꽃그늘에 앉아 삼삼오오 도시락을 먹는 등산객들은 물론 진달래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연인들의 얼굴도 상기된 듯 연분홍 빛이다.

봉우재에서 4백39m봉 반대편으로 난 나무 계단을 따라 6백여m를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정상에 오르면 발밑으로 여수 산업단지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동북쪽으로 바다 한가운데 묘도가 떠있고 그 너머로 호남정맥의 종착지며 고로쇠로 유명한 백운산(전남 광양시)이 손짓한다. 동쪽으로는 한려수도를 사이에 두고 망운산(경남 남해시)이 영취산을 마주보고 있다.

정상에서 4백50m봉을 지나 상암초등학교까지 하산길은 3.3㎞. 4백50m봉을 지나 상암초등교·월내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도 온통 진달래 투성이다. 4백50m봉 아래로는 1997년 영취산에 번졌던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불길에 소나무 등 나무들이 타 죽으면서 생명력이 강한 진달래가 더욱 많이 퍼지게 됐다고 한다.

다도해에서 붉게 물든 능선을 따라 불어오는 봄바람이 시원하기만 하다. 어느새 연분홍빛 진달래꽃도 엷은 꽃잎을 나부낀다. 웃는 것일까, 우는 것일까, 무엇을 호소하는 것일까.

◇여행 쪽지=여수시외버스터미널(061-652-6877)앞에서 52번 시내버스를 타면 흥국사 주차장까지 갈 수 있다. 하루 20여 차례 버스가 운행한다. 요금은 7백원. 시외버스터미널~상암초등학교 구간에도 72, 73번 시내버스가 하루 20여 차례 다닌다.

등산보다 진달래 구경에 초점을 맞춘다면 흥국사에서 봉우재까지만 올랐다가 다시 흥국사로 내려오는 일정을 택하는 게 좋다.

산을 넘고 싶으면 흥국사 입구에서 흥국사를 왼편에 끼고 산행을 시작해 4백39m봉·4백5m봉·정상·4백50m봉을 거쳐 상암초등학교 앞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권할 만하다.

4백50m봉에서 월내 또는 LG정유 방면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도로에 닿기 때문에 버스나 택시를 타기가 쉽지 않다. 다만 산업도로를 지나는 지역 주민들이 등산객들을 태워 주는 경우가 많아 큰 걱정은 안해도 된다. 영취산 진달래축제 추진위원회 061-691-3132,www.jindalrae.or.kr

영취산=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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