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다름’을 존중하지 않으면 세상은 차별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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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휴머니스트를 위하여
콘스탄틴
폰 바를뢰벤 지음
강주헌 옮김, 사계절
572쪽, 2만9800원

“오디세우스가 돌아왔더라도 조국을 보기 위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조국 땅에서도 계속 떠돌아 다녔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랍권에서 위대한 시인으로 꼽히는 아도니스(80·본명 알리 아흐메드 사이드 에스베르)가 한 말이다. 노시인은 “조국이 일종의 여행지”라며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리아 출신으로 어릴 때 코란을 암송하며 자랐지만 그의 정신은 코란에 갇혀 있지 않았다. 오히려 후에 “신은 죽었다” “내 뿌리는 전 인류”이라고 말할 만큼 그의 정신은 자유로웠다.

아도니스의 인터뷰를 포함해 세계 지성 27인과의 대화를 담은 이 책을 보면 다양한 논점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분모가 보인다. 개방성이 그것이다. 그들은 특정한 공동체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으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이들에게 절대권력, 이데올로기로 변한 종교는 경계 대상 1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 들어서 ‘다문화주의’는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작은 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인위적인 보편 윤리만 내세우는 것은 진정한 다양성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의류브랜드 베테통 광고의 한 장면. [중앙포토]

지은이는 비교문화학자이자 인류학자다. 20세기에 족적을 남긴 석학들의 육성을 담은 책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27명을 모두 만나 대담하는데 꼬박 8년이 걸렸다고 한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2009), 건축가 필립 존슨, 철학자이자 도시계획자인 폴 비릴리오(78) 등을 만났다.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69)도 ‘정체성’에 의문을 품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체성의 개념이 소속의 개념으로 바뀌어 버렸다”며 “지식인의 책임은 이런 정체성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 시대에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의문을 갖는 힘’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들은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유연한 만큼 타자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인 것도 닮았다. 나딘 고디머(87)는 “동질성 문화의 시대는 끝났다”며 “애국주의를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애국주의가 내면의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장되게 표출한 민족적 자긍심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대담의 주제를 세계화·인권·과학기술 등에 집중했다. 수소폭탄을 개발·제조에 앞장 선 에드워드 텔러(1908~2003)가 “과학기술이 가져올지 모르는 부작용 때문에 개발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진짜 위험은 두려움에 있다. 민주주의가 무지로 개선될 수는 없다”고 한 말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27인과의 대담을 담고 있어 제법 부담스러워 보이는 분량이지만 앞서 각각의 대담은 주장이 분명하고 다양한 토론거리를 담고 있어 흡인력이 강하다. “정체성은 미래에서 주어지는 것” “이질성이 자유의 기본 조건이다. 자유가 없다면 불균형과 두려움과 인종차별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담은 아도니스의 인터뷰는 전문 자체가 시(詩)로 읽힌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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