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春鬪 측 KO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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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올해 일본의 춘투(연초의 임금협상)가 사용주 측의 압승으로 끝났다.

닛산(日産)자동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대기업이 기본급을 동결하거나 오히려 삭감했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건비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회사측 요구에 노조측이 끌려가는 양상이었다. 노조로서는 고용안정이 무엇보다 급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난해 일본 재계 사상 최대인 1조엔대의 이익을 낸 도요타자동차가 기본급을 동결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경영자단체인 닛케이렌(日經連)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도요타 회장) 회장은 "올해 춘투는 90점짜리"라고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내년에도 기본급 인상은 없다"고 강조했다.

◇고용 유지가 급선무=장기침체로 고용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이라 노조측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실업률은 지난해 7월 처음으로 5%를 돌파한 뒤 올 2월에는 5.3%를 기록했다. 실업자수는 지난 2월 3백56만명에 달해 11개월 연속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최대의 노동단체인 렌고(合)는 올해 처음으로 기본급 인상지침 발표를 포기해야 했다. 고용안정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기노조연합은 아예 처음부터 고용안정을 대가로 기본급 동결을 회사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임금체계 변화 바람=일본 기업들은 이번 춘투를 계기로 기존 임금체계를 뜯어고칠 방침이다.

경기가 좋아져도 기본급은 올리지 않는 대신 경영실적에 따른 보너스를 줄 수 있다는 쪽이다. 카메라·복사기업체인 캐논의 경우 연공서열식 임금체계에서 핵심 요소인 정기승급을 폐지하기도 했다.

다만 닛산자동차는 프랑스 르노에 인수된 후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참아준 직원들에게 보답하는 차원에서 기본급을 1천엔씩 올려줬다.

전문가들은 과거와 같은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성과에 따른 보상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조의 역할도 과거와 같은 임금투쟁이 아닌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는지 감시하는 쪽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크셰어링 도입 가속화=일본 후생노동성·닛케이렌·렌고 등 노사정은 최근 회의를 열고 근무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눠갖는 워크셰어링 제도를 추진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일자리를 나누면 근로자 개개인의 임금은 줄어들지만 실업은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규 사원과 아르바이트의 중간 위치인 단시간 근무 사원제를 신설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측은 워크셰어링을 실시하는 기업엔 재정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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