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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남북 문인들의 금강산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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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미 보도된 대로 지난 13일 금강산에서는 좀 특이한 시상식이 열렸다. 북녘의 작가 홍석중이 쓴 소설 '황진이'에 대한 제19회 만해문학상 수여가 뒤늦게 금강산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구룡연 골짜기 입구 목란관에서 열린 행사는 남북 각기 7명이 참석한 자못 조촐한 규모였다. 그러나 전날 도착 직후의 만찬 때부터 같은 문인들답게 쉽사리 뜻이 통하고 정이 오감을 확인했고 이번 행사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시상식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따뜻했다.

*** 6·15 선언 구체적 실행 노력을

행사 주최 측을 대표했던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자화자찬일지 모르나 이 모임의 의의가 실로 특별했다고 본다. 남북 문인들의 접촉이야 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종전의 만남들이 행사나 사건으로 말미암은 교류였다면 이번에는 문학작품에 기인한 교류가 행사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이 남다르다. 북에서 쓴 작품을 남에서 읽고 남녘 나름의 문학적 기준에 따라 심사하여 수상을 결정했으며 이 결정이 일방적인 손짓으로 끝나지 않고 북녘의 본인에게 실제로 상이 전달되었다는 것, 이것은 분단의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일 뿐더러 민족의 분열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참으로 소중한 선례다.

홍석중씨가 답사에서 말했듯이 6.15 공동선언이 아니었다면 이는 꿈도 못 꾸었을 일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즉 공동선언을 실천하라고 외쳐대는 일도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이제는 각자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남과 북의 극한을 떨쳐버린 사고를 하고 구체적인 실행을 쌓아가는 데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문학상이나 학술상을 줄 때 굳이 남한의 인사로 한정하지 않는 것도 그 한가지일 터이며, 더 중요하기로는 문학을 하고 학문을 함에 있어 스스로 '반쪽 나라의 한계'에 갇혀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되새겨보는 자세가 요구된다.

금강산의 시상식은 하나의 편법이라면 편법이었다. 원래 창비 측은 홍석중씨가 11월 24일 서울 시상식에 참여하도록 초청했었는데 북측의 호응이 없었다. 우리가 평양에 가서 전달하는 것도 매우 극적인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금강산에서의 만남은 차선책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차선책이라도 가능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니 6.15 선언을 통해 큰 원칙이 제시된 이상 그 실천은 무수한 편법의 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도리어 최선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번 시상식 말고도 이산가족 상봉 등 온갖 만남이 '편법'으로 금강산에 집중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여기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원불교의 창시자인 박중빈(朴重彬)선생은 1930년대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나서 '금강산이 세계에 드러나니 조선이 새로이 조선이 된다(金剛이 現世界하니 朝鮮이 更朝鮮이라)'라는 글귀를 남긴 바 있다.

이런 전망은 그가 살던 일제하는 물론 광복 후에도 오랫동안 실감하기 어려웠다.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분단이 고착되면서 통일된 새 나라는 여전히 아득한 이야기였고, 금강산 자체가 옛날보다 세인의 발길이 오히려 드물어져 차라리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형국이었다.

*** 금강산의 특별한 위상 새삼 느껴

그러나 지난 몇 해 사이에 얼마나 달라졌는가. 남북이 합의한 관광사업과 더불어 금강산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6.15 선언 이후 단연 빛을 더하게 되었다. 심지어 분단현실로 인해 북의 다른 명산들을 제치고 독보적인 관광명소로 떠올랐으며 남북 간 실질적 교류의 중요한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풀리고 다른 곳을 통한 접촉이 늘어나더라도 금강산의 독특한 위상은 유지되리라 본다.

정작 문제는 금강산이 세상에 드러나는 만큼 새롭고 온전한 나라가 만들어질 것이냐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무슨 예언에 기대기보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야 마땅한 일이다.

어쨌든 나는 금강산과 개성공단으로 육로가 열리면서 군사분계선의 철조망이 한 자락씩 끊겨 나갔듯이 이번 행사가 우리 마음속의 철조망 한 자락을 걷어냈기를 염원하면서 서울로 돌아왔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인.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