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 이런 것이 '핏줄'이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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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집으로…'는 한편의 동화 같은 영화다. 웃음이 있되 헤프지 않고 눈물이 나되 우울하지 않은, 보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오는 '착한' 동화 말이다.

평생을 시골에서 지낸 일흔일곱살 할머니가 태어나서부터 도시 생활만 해온 일곱살짜리 버릇없는 손자와 뜻하지 않은 동거를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그냥 사소한 '에피소드'지만 그 나름의 구수한 맛이 있다.

읽는 시간이 덜 걸린다고, 구성이 단순하다고 동화를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집으로…'는 감독의 계산이 그 어떤 영화보다 치밀하게 작용한 영화다. 할머니와 손자, 닭 백숙과 켄터키 치킨, 시골과 도시, 자연과 문명 등의 이항 대립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축이다.

이정향 감독은 관객에게 할머니를 업신여기며 심통을 부리는 손자와 '무저항주의'로 일관하는 할머니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하며, 전편에 걸쳐 '손자의 모든 것을 보듬어안는 할머니의 힘'이라는 전파를 강하게 보낸다.

이러한 직설적인 대조법을 물론 끝까지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쭉쭉 찢어주는 할머니의 김치와 손자가 밥상 앞에 끼고 앉은 스팸(깡통 햄)은 화해가 영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핏줄이니까). 손자는 할머니 곁을 떠나기 전날 아프거나 보고 싶으면 보내라고 말 못하는 그녀를 위해 그림 엽서를 준비하고, 할머니는 손자의 게임기 배터리를 사라며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두장을 싸서 건넨다.

주인공 꼬마 상우와 상우 엄마를 빼놓고 출연진 전원을 충북 영동의 한 마을 주민들로 캐스팅해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이 영화는 자연스러운 연기와 여기서 빚어지는 리얼리티를 최우선 조건으로 내걸었던 감독의 의욕을 무난히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등이 반 넘게 꼬부라진 할머니와, 멀찌감치 떨어져 괜히 돌부리를 차며 심통을 부리는 손자의 모습을 잡은 화면은 참 예쁘다. 이 지점에서 현실 밀착적인 리얼리즘 영화를 기대했던 이들의 볼멘 소리가 들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요즘은 할머니가 외손자를 키워주는 게 속 없는 짓으로 치부되는 세상 아닌가.'집으로…'는 이런 점에서 한편의 유쾌한 시대착오적인 작품인 셈이다. 전체 관람가. 5일 개봉.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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