保革 논쟁 : 6월 지방선거가 변화의 분수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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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노무현 고문이 대선 후보로 확정돼 정계개편을 추진할 경우 대선 구도는 일단 보혁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영호남 맞대결'의 지역 대립이 이념 대결로 대체되는 셈이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런 방향으로 정치 지형이 바뀌는 데 대해 "정당간 정책 대결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서울대 朴贊郁교수·정치학)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朴교수는 "보수와 진보의 건강한 대결은 균형잡힌 사회 건설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의 시점을 정치권에선 6·13 지방선거 이후로 잡는다. 만일 盧고문 중심의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한나라당 진보성향 의원 상당수가 '노무현의 정계개편'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반대로 한나라당이 이길 경우 뿌리가 한나라당인 민주당의 몇몇 의원은 다시 한나라당으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 그럴 때 YS·JP의 움직임이나 미국의 태도는 주목거리다.

하지만 이런 식의 '헤쳐 모여'가 실제로 일어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념 정당이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데다 과거 여러 차례의 실험이 모두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혁을 가르는 기준이 명확치 않고, 지역성향의 투표행위가 여전한 상황에서 보혁 구도는 정책 대결보다 색깔론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혁 정계개편의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계층·이념 갈등은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른 후유증도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벌·주한 미군 등에 대한 타협없는 논쟁과 계층 갈등 심화로 '길거리 정치'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결국 보혁 구도는 '위장된 지역 구도'로 발전할 것이란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신당=DJ 신당'(南景弼대변인)이라고 지역 딱지를 붙여 공세를 퍼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의원은 "대한민국에서 선거판이 보혁 구도로 잡히면 7대 3의 비율로 보수가 승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남북 분단 상황이 '친북 시비'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盧고문도 보혁 구도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그는 대신 '민주와 개혁 세력의 통합'을 내세워 '개혁 대 반(反)개혁 세력 대결 구도'를 만들어 나갈 작정이다.

그러나 대결 구도가 어떻게 형성되든 현재의 보혁 논쟁은 보다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대통령학)교수는 "냉전적 사고에 바탕한 무차별적인 색깔론도 문제고, 선거에서 불리하다고 색깔을 감추거나 위장하는 것도 문제"라며 "주요 정책을 놓고 후보들이 각자의 이념을 허심탄회하게 밝히는 논쟁이 아쉽다"고 말했다.

최상연·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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