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5월 아파트 거래, 최근 4년 평균보다 67% 줄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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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거래가 안 돼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가장 큰 덩어리다. 집이 안 팔려 이사를 가지 못하는 어려움은 주택시장 안정과 관계없이 서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실제 서울과 수도권 주택 거래 침체는 꽤 심각한 상황이다. 17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5월 전국 아파트 거래 건수는 3만2141건으로 전달보다 26.9% 줄었고, 최근 4년간(2006~2009년)의 5월 평균 거래 건수와 비교해도 29.2% 감소했다. 특히 서울·수도권 거래 급감이 두드러진다. 수도권의 지난달 아파트 거래 건수는 9028건으로 최근 4년 평균보다 59.6% 감소했고, 서울은 66.7%나 줄어들었다.

기존 주택의 거래가 부진해 새 아파트까지 입주난을 겪고 있다.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앞에 분양가 할인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중앙포토]

오는 8월 완공하는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의 아파트 계약자 박모(50·용인시 상현동)씨는 최근 크게 실망했다. 집을 내놓은 지 4개월 만에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있었으나 계약 직전 대출 승계 문제로 거래가 불발됐다. 박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2억50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이 있는데 이사 올 사람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정 때문에 1억5000만원밖에 대출을 받을 수 없어 계약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느끼는 체감 경기는 더 썰렁하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 로얄공인 이성우 사장은 “2000가구의 미아 풍림아파트의 경우 예년에는 적어도 한 달에 10건 이상의 매매 거래가 이뤄졌는데 요즘에는 한두 건 정도”라고 전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3930가구)에서는 이달 매매 거래가 된 게 4건뿐이다. 잠실동 송파공인 최명섭 사장은 “한 달 평균 10~15건 정도 거래되다가 지난달부터 거래가 크게 줄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거래 급감의 가장 큰 이유로 DTI를 꼽는다. 지난해 9월 대출 규제가 서울 강남3구에서 수도권으로 확대되면서 실수요자들의 매수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이다. 부동산 정책도 주택 매수심리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주택 정책은 주택시장 안정화를 기해야 하는데 지금의 규제는 거래까지 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상적인 거래마저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권모(38)씨는 ‘집 넓혀가기’를 포기했다. 강남구 역삼동에 급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매입하려 했는데 급매로 내놓은 기존 아파트가 팔릴 기미가 없어서다.

정부 입장과 달리 부동산 업계는 하나같이 DTI 완화를 요구한다. 건국대 정의철(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는 DTI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생애 처음으로 집을 구입하려는 사람이나 일정 규모 이하의 1주택자에 대해서는 일부 완화해 주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수도권으로 확대하거나 올해 말로 끝나는 양도세 중과 감면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우정공인 김상열 사장은 “자금 여유가 있는 다주택자들이 기존 집을 처분하고 새집을 사려고 할 때 가장 걸리는 게 세금”이라며 “양도세 부담을 좀 덜어주면 주택 거래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예상되는 ‘금리 인상’에 대비해 1주택자와 다주택자 간의 금리 적용을 차등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우리은행 안명숙 부동산팀장은 “실수요자들이 보다 싸게 대출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거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건의했다.

함종선·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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