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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信用 안 따지는 신용카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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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용사회의 증표인가, 신용불량의 주범인가. 마법의 카드로 여겨져 왔던 신용카드가 요즘엔 애물단지로 전락한 듯하다. 과소비와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범으로 꼽히는가 하면 청소년 탈선의 도구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동안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해온 정부는 돌연 무분별한 회원 늘리기 경쟁을 막는다며 카드회사에 대한 제재에 나섰다. 신용카드의 사용 실태와 문제점 및 개선책 등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미국에서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최근 돌아온 회사원 金모(43·경기도 고양시)씨는 요즘 신용카드 쓰는 맛에 푹 빠져 있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신용카드로 척척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탈 때도 교통카드를 겸하는 신용카드 한장이면 그만이다. 신용카드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각종 서비스에다 많이 쓰면 세금혜택까지 주니 굳이 현금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직장에서도 신용카드로 결제한 대금의 상당 부분을 경비로 처리해 준다. 일석삼조(一石三鳥)가 따로 없다.

◇신용카드 인프라는 세계적 수준=한국의 신용카드 사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각종 상거래의 35% 정도가 현금 대신 신용카드로 이뤄질 정도로 사용이 일반화됐다. 미국은 10%대이고, 일본은 더 낮다. 놀이공원 무료 입장을 비롯해 각종 무료·할인 및 포인트 적립 서비스도 한국만큼 다양한 곳이 없다.

세계적인 영업망을 갖고 있는 비자카드의 한국지사 관계자는 "한국의 가맹점(신용카드를 받는 업소)비율이나 카드 인식 단말기 보급률 등 카드산업 인프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꼽힌다"며 "이 때문에 미국 본사도 신상품을 개발하면 시범 사용장소로 한국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카드 이용 폭증의 명암=1999년까지 1백조원을 밑돌던 신용카드 이용액은 영수증 복권제와 세액공제 혜택 등 정부의 권장책에 힘입어 2001년엔 4백43조원으로 늘었다. 2년 연속 두배 이상씩 증가한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거래 관행이 투명해진 덕분에 2000년에 2조원, 2001년에 4조원의 세금이 더 걷혔다. 지난해 내수를 떠받친 소비 증가에도 한몫 한 것은 물론이다. 소비자로서는 현금 대신 쓰는 편리함에다 급할 때 손쉽게 쓸 수 있는 급전창구로서의 쓰임새도 크다.

그러나 신용불량자 급증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카드업체의 회원수 늘리기 경쟁이 경품행사에다 길거리 모집까지 번지면서 무분별한 카드 발급의 폐해가 커지고 있다. 99년 경제활동인구당 채 두장이 되지 않던 신용카드 발급 숫자가 지난해 말에는 넉장으로 늘어났다. 미성년자·무자격자 불문하고 카드가 남발됐다는 방증이다.

◇비정상적인 이용 패턴=신용카드의 본래 기능은 물품·서비스를 신용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부대 기능에 불과한 현금서비스가 기형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99년까지 전체 카드 이용금액의 절반 수준이었던 현금서비스 비중이 2000년에는 급기야 60%를 넘어섰다.

카드업계는 "가맹점 수수료에선 거의 남기는 게 없다"며 "실제 이익의 대부분은 현금서비스에서 얻고 있다"고 인정한다. 이런 행태는 고금리의 현금서비스를 무턱대고 쓰는 사용자에게 기본적인 원인이 있지만 이를 노리고 카드 사용자를 유혹하는 카드 회사들의 영업행태도 문제다.

차진용·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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