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와 中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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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주에는 중국에서 날아온 황사 때문에 남북한이 모두 대낮인데도 밤처럼 앞을 내다보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중국에서 날아온 것은 황사만이 아니었다. 최근 25명의 탈북사건과 관련, 중국 정부가 "조용하게 행동해야 했는데, 앞으로 협조 못할 상황이 되고 있다"고 우리 정부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소식도 황사처럼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탈북자 25명이 주중 스페인 대사관으로 들어갔을 때 중국 정부가 이들에게 '난민'지위를 주는 것은 반대하지만,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중국의 인도주의적 배려에 고마움을 느낀 것은 나 혼자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25명의 탈북자가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후에 중국 정부는 탈북 과정에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난 비정부단체들에 대해 중국의 국법을 어기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실제로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한·중수교 10주년이 된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참으로 오랫동안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1949년 중국 공산정권의 등장으로 한·중관계는 단절돼 냉전이 종식된 후에야 비로소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지난 10년간 한·중관계는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특히 정치외교 분야에서도 정상회담을 포함한 양국 지도층의 대화는 한국과 중국간의 상당한 상호 이해를 가져왔다. 그렇기 때문에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는 우리에게 더욱 실망스러운 것이다. 본질적으로 탈북자 문제는 국가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의 문제다. 탈북자 문제는 궁극적으로 중국이라는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중국이라는 문명은 과연 개인의 존엄성과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가? 아니면 국가의 집단적 이익을 더욱 중요시하는가? 우리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처리하는지,아니면 국가의 편의를 기준으로 처리하는지에 따라 중국 문명이 지향하는 가치관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왔다. 따라서 개인의 존엄성과 행복에의 권리에 대한 우리들의 의식구조에는 중국적 경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놀랄 것이 없다.다만 근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서양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을 다시 생각하는 경험을 갖게 되었고 그 결과로 중국의 사상적 전통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얻게 되었다.

중국은 지금 거대한 근대화의 흐름을 타고 미지의 미래를 향해 항해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의 접촉이 숙명적일 수밖에 없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진전해 주기를 바란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에 불만을 표시하고 탈북을 돕고 있는 시민단체들에 경고한 것은 북한측의 불평을 막기 위한 제스처였는지 모른다. 아니 그것이 중국의 저의였기를 바란다.

중국이 정말로 우려하는 것은 탈북자가 계속 늘어남에 따라 1989년 동독에서와 같이 공산정권이 붕괴되는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목숨을 내놓고 북한을 탈출할 정도로 북한체제를 거부하는 사람은 탈출을 막고 북한 안에 잡아 둔다고 해도 오히려 체제에 더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정부의 편의를 위해 가장 비인도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주게 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결국 21세기에 중국이 일류국가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국의 가치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는 황사도 그쳤듯이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우리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소식은 없었으면 한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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