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죽이려 남파된 것 맞나” … “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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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피고인 직업이 뭐죠?”(재판장) “….”

“서류에는 정찰총국 공작원이라고 하는데, 맞습니까?”(재판장) “맞습니다.”

16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 423호 법정. 피고인석에 선 간첩 김명호(36)와 동명관(36)은 ‘직업이 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머뭇거렸다. “공소 사실을 인정하느냐” “검찰의 신문조서를 읽어봤느냐”는 질문에도 “네” “읽어봤습니다” 등으로 짧게 답했다.

황장엽(87)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위장 탈북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로 구속 기소된 이들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부장 조한창) 심리로 첫 재판을 받았다. 황토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선 두 사람은 키가 1m75㎝가량으로 북한인 치고는 큰 편이었다. 마른 체구였지만 탄탄한 근육질이었다. 김은 스포츠 머리, 동은 상고머리를 하고 있었다.

재판 내내 김은 극도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30여 분간 진행된 재판에서 김은 방청석을 외면한 채 재판장만을 바라봤다. 재판장의 질문에도 말을 웅얼거리며 자신 있게 대답을 못했다.

반면 동은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장이 주소를 묻자 ‘평양시 낙랑구역 통일거리’라고 짧게 답하고 이따금 방청석을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동은 검찰이 공소 요지를 설명하면서 “두 사람은 김영철 북한 정찰총국장의 지시를 받고 황장엽을 암살하고자 했다”고 추궁하자 수차례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재판이 끝나기 전 ‘피고인들은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장의 말에 두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재판부는 국정원·경찰청 등 관계기관 공무원과 기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했다. “돌발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과 국정원에 따르면 동명관 등은 지난해 11월 김 총국장으로부터 “황장엽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고 같은 해 12월 태국으로 밀입국했다. 이후 김과 동은 각각 올해 1월, 2월에 탈북자를 가장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하지만 입국 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다른 탈북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진술이 나와 결국 신분이 발각됐다. 이들은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황장엽 전 비서 암살 계획을 자백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에 대해 23일 한 차례 공판을 더 연 뒤 변론을 종결할 방침이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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