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메가뱅크보다 알찬 KB 만드는 데 역점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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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KB금융지주는 지금 만신창이다. 9년 전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이 합병했을 때만 해도 명실상부한 리딩뱅크였지만 지금은 그 위세를 다 잃었다. 2위보다 두 배 이상 많았던 자산은 지금 거의 차이가 없고 경영 효율성은 오히려 한참 뒤처졌다. 이런 상황에서 엊그제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이 신임 회장으로 내정됐다. 평소 금융에도 삼성전자 같은 초일류기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사람이다. 그가 이 소신을 KB에서 제대로 실현해 한국 금융의 선진화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 어 회장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일은 관치의 불식과 이를 위한 제도의 개선이다. KB는 순수한 민간기업이다. 정부 지분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관치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일 잘하는 CEO를 밀어내기도 했고, 신임 CEO의 선임에도 개입했다. 이번에도 관치 논란이 불식되지 않았다. KB가 그동안 낙후돼왔던 데는 관치 탓이 컸다. 따라서 이 논란이 불식되지 않는 한 ‘금융의 삼성전자’는 불가능하다. 당연히 정부가 앞장서 관치 매듭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내정자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은행의 장래를 위해 정부와 대립각도 세울 필요가 있다. 관치 논란을 없앨 지배구조 개선책 마련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승계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차기, 차차기 CEO가 있다면 관치 가능성은 한결 줄어든다.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비전은 KB 내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친 후 결정할 문제다. 이런 점에서 선임 직후 바로 메가뱅크(초대형은행)론을 주장한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다른 금융기관의 인수합병 방침을 밝힌 것도 마찬가지다. 비전과 전략은 내정자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사회에서 치열한 토론 과정을 거친 후 내놓았어야 했다. 의욕은 좋지만 독선으로 흘러선 안 된다. 게다가 덩치는 크지만 효율성은 낮은 지금의 상태로 대형화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내실 다지기가 우선이라고 본다. ‘관치 논란’의 약점은 있지만 그래도 탁월한 경영자를 선임했다는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