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1> 제100화 '환란주범'은 누구인가 (25) 속 모를 Y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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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997년 10월 28일 오후 10시쯤 김영삼 대통령이 갑자기 필자를 전화로 찾았다. TV 뉴스를 보고나서였다. 내가 바로 관저로 전화를 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대뜸 화를 냈다. "강경식이 국회에 가서 경제의 펀더멘털은 좋다고 하던데 그 사람 그래도 되는 거야."

거의 고함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테레비를 보니까 경제가 어려운데 부총리란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거야."

"제가 직접 듣지 않아서 자세히 모르겠습니다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마침 지금 같이 모여서 대책 회의를 하니 제가 자세히 들어보고 내일 아침에 상세히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당신도 말이야, 마찬가지야."

"…지금 밤 늦게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회의 결과를 내일 어차피 상세히 보고드려야 하니 그때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받고 나서 회의실로 들어가며 나는 가슴이 답답했다. 그날 회의는 이미 밝힌 대로 홍콩 증시 폭락 사태 나흘 뒤인 27일 내가 金대통령에게 건의해 金대통령이 직접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경제팀에 지시해 열린 것이었다.

하루 종일 국회에서 시달린 강경식 부총리는 얼굴이 시커멓게 된 채로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그날 밤 자정 넘어 회의를 끝냈을 때 나는 姜부총리와 따로 남았다.

"오늘 국회 발언 내용을 놓고 대통령께서 매우 언짢아 하십디다."

차마 金대통령이 내게 소리 질렀던 내용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었다.

"지금 외환사정이 나쁜데 내가 국회에서 그걸 그대로 말할 수 있겠소. 그렇게 얘기하면 그냥 외신을 타고 세계로 나가는데."

姜부총리는 어이없어 했다. 그게 바로 당시의 이른바 '펀더멘털 튼튼론(論)'이었다.

어쨌든 나는 金대통령이 뭔가 크게 못마땅해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고 姜부총리에게 내 뜻을 말했다.

"내일 출근과 동시에 저는 사직원을 내고 신임을 여쭤보려고 합니다."

"아, 그래요. 나도 그러지요."

다음 날인 29일 오전 나는 金대통령에게 전날 대책회의 결과와 함께 姜부총리 국회 발언의 경위를 보고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래서 姜부총리는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외환사정을 있는 그대로 밝힐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경과야 어찌 됐든 저희가 경제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 하는데 경제가 잘 안풀려 죄송합니다. 사의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사직원을 김용태 실장에게 맡겨놓겠습니다."

그때도 金대통령은 별 반응이 없었다.

姜부총리도 그날 오후 3시30분부터 金대통령에게 전날 대책회의 보고를 마치고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姜부총리는 예산 주무장관으로서 국회 예산심의 도중에 물러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예산국회가 끝나는 11월 20일자로 된 사직원을 金실장에게 맡겼다. 며칠 뒤 金실장은 우리의 사직원을 돌려주었다.

"각하께서 그저 잘 하라는 뜻이었지 다른 뜻은 없었다고 하십니다."

그 사직원을 나는 그대로 갖고 있다가 11월 18일 금융개혁법안이 무산된 직후 다시 낸 것이었다.

구두(口頭)만으로 처음 사의를 표명했던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97년 8월 말이었다. 당시 한 언론이 사설로 '姜부총리 등 경제팀이 실정(失政)의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나야'라고 썼을 때였다.

개각까지 이어질 정도로 분위기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느낀 나는 金대통령에게 직언했다.

"언론에서 이렇게 나오지만 지금 부총리를 바꾸시면 안됩니다. 그간 추진해온 큰 일들이 많은데 지금 부총리를 바꾸시면 정책의 기본이 흔들립니다. 각하께서도 그래서 지난 8·5 개각 때 정치인 출신 각료 전원을 당으로 돌려보내시면서도 姜부총리만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임시키신 것 아닙니까. 혹시라도 누구 하나를 바꿔야 할 정치적 필요가 있다면 저를 바꾸십시오."

그때도 金대통령은 그냥 "알았다"였을 뿐 아무 다른 반응이 없었다.

당시에도, 이후 10월 29일 사의 표명 때도 우리를 바꾸지 않았던 金대통령은 결국 왜 하필이면 11월 19일 IMF행 발표 예정 당일 날 우리를 경질했을까.

우리에 대한 신임의 결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외환위기에 대한 인식의 결여 때문이었을까. 임명권자의 깊은 뜻을 내가 어찌 다 알랴.

정리=김수길 기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제 100화 ('환란주범'은 누구인가)는 필자 김인호씨의 사정으로 일단 중단합니다. 다음주 월요일부터는 김장환 목사(수원 중앙 침례교회 담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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