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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는 아파트 부실시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며칠 전 한 독자가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가 어떻게 이런 부실 공사를 할 수 있느냐"며 하소연했다.

내용을 천천히 들어봤다. 제보자의 얘기가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믿기 어려워 직접 만나 부실시공을 담은 사진들을 관찰해봤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물이 새고 문짝이 뒤틀리는가 하면 소음방지·방염처리도 제대로 안되는 등 부실의 정도가 도를 넘었다. 3류 회사도 이보다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아파트 부실공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것도 대형 건설업체들이 짓는 건물의 부실 정도가 더 심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 서초동 S주상복합아파트.유명건설사인 S사가 평당 3백47만원에 사업시행사 K사로부터 수주받아 공사한 건물이다.

지난해 7월 준공돼야 하는데도 부실시공 부분을 고치느라 입주가 8개월째 지연되고 있다. 주방에서 물이 새 나무마루판이 뒤틀리는가 하면 화장실문이 안맞을 정도로 부실이 심하다. 고급품을 쓰기로 한 화장대·수납장 등 가구들도 표면이 벗겨지는 저급품이다.

환기처리도 제대로 안되고, 엘리베이터실·문틀·천장 등의 소음방지 및 방염 처리에도 불에 타면 유독가스가 나오는 우레아폼을 사용했다는 게 사업 시행사의 주장이다. 평당 2백70만원대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건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H아파트. 고급 브랜드에 걸맞지 않게 부실 덩어리다. 입주자들은 윗집의 TV소리가 들릴 정도로 소음이 심하고 내부 공사도 매끄럽지 못하다고 불평한다.

한때 큰 인기를 누렸던 경기도 용인 수지 일대 L아파트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서울 금호동 D아파트·방배동 H아파트·분당 T오피스텔도 층간 소음이 심하다. 경기도 파주의 D아파트는 지하 주차장 진입로가 너무 가파르다. 임대아파트의 부실시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분양가 자율화 이후 공사비를 엄청 올려받고 있으나 시공 수준은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왜 이런 유명 브랜드들이 부실 공사를 하고 있을까.

대부분 자체 사업이 아닌 도급받은 공사여서 시공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 시행사도 돈만 벌면 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부실공사로 인한 입주민의 민원문제는 사업시행사가 해결해야 하므로 시공사로선 부담이 별로 없다. 물론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갈 수 있지만 입주자들은 집값 하락을 우려해 웬만하면 쉬쉬하고 넘어가 소문이 퍼지지 않는다.

도급 관련 비리도 부실시공의 한 요인이다.

한몫 챙기기에 바쁘다 보니 공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전문가들은 반문한다. 물론 모든 건설사들이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일부 현장들의 부실 요인을 분석해보니 대충 그런 결론이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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