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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먹고 죽어가는 동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연말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18년간이나 관람객의 사랑을 받아온 잔점박이 물범 한 마리가 몰지각한 관람객들이 던져준 동전 때문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물범의 뱃속에는 자그마치 1백24개의 동전이 들어 있었다. 동물애호가임을 자처하며 찾아온 관람객의 순간적인 호기심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해온 잔점박이 물범이 이 지경을 당한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물원에서 소화불량에 걸려 죽은 동물의 배를 해부해 보면 비닐을 비롯한 온갖 이물질이 들어있곤 한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너무나 자주,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과연 몇 마리 동물들의 어쩔 수 없는 죽음일 뿐이라고 넘겨야 할 것인가.

현재 서울대공원 동물원에는 국제협약에 의해 세계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멸종위기의 동물들과 우리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보호 대상인 천연 기념물을 비롯해 3백60여종 3천3백여 마리의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이들의 생각처럼 이 동물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설계 당시인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앞서 가는 시설이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오늘날 서울 동물원의 수준은 동물들의 서식지 환경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비판과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동물원에서는 뒤늦게나마 세계 선진 동물원을 둘러보고 세계적인 전문가들을 초청해 우리 동물원의 문제점을 개선해 동물들의 서식지 환경과 비슷한 생태형 동물원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10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연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면 우리 동물원도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서 말이다. 그러나 시설만 나아지면 무슨 소용인가. 관람문화가 같이 병행해 향상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개발에 주석편자'일 뿐이다.

잔점박이 물범의 죽음은 우리의 관람문화가 아직도 이기적인 호기심과 말로만 부르짖는 동물사랑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행락시즌이 다가오면 걱정부터 앞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총포나 화약류 등으로 새를 비롯한 야생동물을 마구잡이로 사냥해서는 안된다고 법과 규칙으로 정해놓은 까닭은 '야생동물의 보호'에만 그치지 않고 모든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보전·보호하자는 데 본질적 의미가 있다. 자연에의 사랑을 통해 정서와 감정에 윤기를 불어넣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르자는 것이 그것의 참 뜻이다.

슬기의 산물인 인공의 문명이 자연과의 조화 속에 다듬어질 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얼마나 기름진 마음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인간다운 생활요건을 갈구하면서도 한쪽에서는 천혜의 환경을 지켜가지 못하고 스스로 파괴하는 현실의 황량함을 통탄하면서 우리는 한 마리의 잔점박이 물범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 것이다.

이제 머지않아 월드컵이라는 세계적인 축제가 우리 땅에서 펼쳐진다.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를 찾을 것이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관람문화에도 선진시민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모범을 보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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