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할머니' 될때까지 연기에 미쳐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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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발랄한 언니' 윤석화(48)와 '차분한 동생' 추상미(30)가 만나니 아귀가 너무 잘 들어맞는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언니의 달변에 고개를 끄덕이던 동생은 자기 생각을 요령 있게 정리해 균형을 잡는다.

윤씨가 대표로 있는 공연 전문지 '객석'의 대학로 사무실. 천장에 난 창문을 뚫고 들어온 봄볕이 따사롭다. 훈훈해진 공기만큼이나 둘의 대화도 백화난만하게 이어진다. 영화·음악·미술 등 소재의 제한이 없다. 스타급 배우로서의 각오, 일상인으로서의 자세 등을 논하다 보니 어느새 예술과 생활의 선 긋기도 사라진다.

"너, '생활의 발견'(22일 개봉)에 출연했지. 1996년 '꽃잎'부터 눈여겨 보았어. 그 때는 돌아가신 추송웅씨의 딸인지도 모르고 '쟤가 누구야'하고 물어보았다가 무식하다는 말도 들었지."(윤석화)

"연극이 끝난 뒤 무대 뒤에서 여러 차례 뵈었지만 이렇게 마주 앉기는 처음이예요. 선배님의 얘기를 항상 듣고 싶었거든요."(추상미)

때마침 벽 한편에 붙은 연극 '꿀맛'의 포스터가 보였다. 윤석화의 75년 데뷔작이다. "어머, 어린 소년으로 나왔네요. 제가 세살 때였어요"라고 동생이 놀라자 "나보다 먼저 네 부모님이 이 작품에 나오셨지. 아마 여기서 만나 두 분이 결혼했을 걸"이라며 언니가 답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연기 쪽으로 흘렀다. 윤씨가 일편단심 연극 무대를 지켜온 반면, 추씨는 영화·연극·드라마 등 다방면에서 뛰고 있다.

"좋은 연기는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자신에게 헌신해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치열해야 한다는 뜻이야. 그래야 생명력 있는 배우로 클 수 있지. 단언컨대 난 지금까지 최선 이상으로 살아왔어. 그렇다고 뭐가 되려고 한 건 아니야. 그랬다면 성취 못한 것에 대한 허전함이 크게 남았겠지. 끊임없이 자신을 못살게 하는 게 진정한 프로일 거야." 힘과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언니의 말문이 터졌다.

"성격은 달라도 비슷한 게 참 많은 것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연기에 관한 한 저도 욕심꾸러기죠. 특히 저는 배우란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과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 힘이 대중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보아온 까닭에 인기나 돈 같은 것은 꿈꾸지 않았거든요. '허튼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죠.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연기가 더 좋아져요. 일상과 분리되지 않는 연기, 그게 유일한 꿈이죠."(추상미)

윤석화가 달라진 시대를 언급했다. 갈수록 풍성해지는 영화판과 달리 왠지 힘이 없어 보이는 연극판, 그리고 여배우의 앞날 등을 꺼냈다.

"연극도 밥벌이가 되고 연극 배우도 스타가 될 수 있어야 해. 난 그런 것을 이뤄냈다고 자신할 수 있어.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려고 애를 썼어. 왜냐면, 내가 한창 활동하던 때만 해도 연극계에선 소위 스타가 거의 없었거든. 기댈 만한 선배나 친구가 드물었지. 거기에 비하면 너는 운이 좋은 편이야. 마음 놓고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 수 있잖아. "

윤석화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가 연극에 전념하는 것은 누군가는 이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야. 연극은 갈 길이 아주 먼 예술이거든. 요즘 상영되는 영화 '아이리스'의 주디 덴치나 연극 '신의 아그네스'의 엘리자베스 애슐리가 이상형이지. 고령에도 기품과 신비를 잃지 않는 그들에게서 경이를 느껴. 두고 봐, 일흔이 돼서도 예쁜 할머니 배우가 될거야. 신념이 우리를 구원해 주는 거니까."

추상미가 언니의 에너지에 흠뻑 빠져든 모양이다. "정말 감동의 물결이네요. 제가 살고 싶어하는 모습 그 자체예요. 대학 1학년 때 읽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글을 아직도 기억해요. 여성성과 남성성이 조화를 이룬 사람을 가장 바람직한 인간으로 제시했죠. 그때부터 제 모델로 남아있죠. 선배에게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남자에게 인기가 없나"라며 언니가 농담하자 동생이 "아니에요"라고 손사래를 쳤다.

얘기의 중심이 배우의 조건으로 옮아갔다. "너, 요즘 그림에도 관심이 많다며. 또 오빠들과 함께 홍대 앞에서 예술영화 전용 극장(떼아트르추)도 꾸려가고 있지. 정말 잘했어. 배우란 모름지기 다방면에서 풍성한 경험을 쌓아야 하거든. 피카소를 봐. 화가보다 문인·음악가 친구가 많았지. 그래서 위대해진 것 아닐까. 내가 어려운 가운데도 '객석'에 열중하고, 평생 작업으로 개성 있는 소극장을 지으려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야. 마음의 풍요가 배우를 살찌게 한다,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윤석화)

"극장 위층에 갤러리 카페를 열었어요. 두 달에 한번씩 작품을 바꾸어 전시하죠. 번듯한 화랑은 절대 아니고요, 차나 술을 들면서 자유롭게 그림을 보자는 단순한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작품을 고르는 데 도움을 주시는 분도 있구요. 배우 이전에 색깔 있는 문화 소비자가 되고 싶어요. 영화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요즘 영화가 잘 된다니까 희곡 작가·연극배우들이 모두들 영화 쪽에 몰리는 것 같아요. 문화란 잡곡밥처럼 고루 섞여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요."(추상미)

윤씨가 마침표를 찍는다. "그래서 내가 말하잖아, 고양이가 아닌 '객석'을 부탁한다고(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패러디한 것). 또 주변 어디에서나 생활을 발견하자고(영화 '생활의 발견'), 안 그래?" 언니의 재치있는 말에 동생이 살포시 웃는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선후배는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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