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흑표범' 골폭풍 선언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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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낯선 땅. 그곳엔 미지의 어색함과 이질감이 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한 도전과 모험정신도 꿈틀거리고 있다.

25세 동갑내기 '흑진주' 엠마누엘 올리사데베(폴란드)와 게랄드 아사모아(독일)는 백인들만의 세계에 과감히 발을 들여놓은 '귀화선수'들이다.

그들에게 2002년은 자신들의 국가를 빛내야 할 사명과 함께 인종과 국가를 뛰어넘어 축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할 임무를 던져준 한해이기도 하다.

▶올리사데베 -'폴란드를 구하라'

2000년 8월, 폴란드로 귀화하고 나서 첫 A매치(루마니아전)에 나선 올리사데베(그리스 파나티나이코스)는 특유의 유연성과 개인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결승골을 뽑아냈다. 그 순간 폴란드 예지 엔겔 감독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엔겔 감독은 스트라이커가 없다며 폴란드축구협회를 반협박, 마침내 대통령까지 나서 올리사데베의 귀화를 전격 추진하게 만든 당사자였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올리사데베는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 혼자 여덟골을 뽑아내며 폴란드를 16년 만에 본선에 진출시킨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그도 처음 1997년 폴란드에 발을 들여놓았을 땐 심한 인종차별을 겪었다.그가 프로리그에서 경기를 하며 코너킥을 찰 때면 어김없이 바나나가 날아오며 "검둥이는 가라"는 노골적 야유가 늘 뒤따랐다.

▶아사모아 -'게르만 순혈주의를 깨라'

2001년 5월은 독일의 축구역사를 새로 쓰게 된 날이다. 독일 축구 사상 최초로 흑인 축구선수 아사모아(샬케04)를 대표팀에 발탁했던 것이다.

아사모아는 12세 때 부모를 따라 독일로 건너온 아프리카 가나 출신이다. 분데스리가 2부리그 하노버96에서 뛰다 99년 이적료 2백30만마르크(약 12억원)를 받고 샬케04로 이적하며 비로소 스트라이커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5월 29일 슬로바키아와의 첫 평가전에서 결승골을 뽑아내며 독일의 2-0 승리를 이끌어냈다. "얼굴색으로 축구를 하진 않는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아사모아가 뮐러-클린스만-비어호프로 이어지는 '전차 군단'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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