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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교통사고 당한후 남는 '마음의 상처' 자칫하다간 심장병 불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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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살짜리 김모양. 얼마전 후진하는 차에 치어 중상을 입은 뒤 밤마다 잠에서 깨 소리를 지르고, 성격이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차를 보면 무서워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우뚝 선다는 것. 게다가 유치원에서도 산만하다고 지적받는가 하면 친구와도 자주 다퉈 병원을 찾았다.

#집안에 침입한 강도에게 성폭행당한 박모(25)씨. 가족을 기피하는 것은 물론 꿈속에서 폭행 상황이 재현돼 잠을 자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자해하기에 이르자 부모는 정신과 문을 두드렸다.

'외상(外傷)후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전형적인 환자 사례다.

◇여성의 발병률이 높다=외상후 스트레스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뒤 극심한 불안이나 악몽 등 후유증에 시달리는 정신과적 질환을 말한다.

전쟁이나 테러, 화재와 같은 대형사건뿐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겪는 교통사고, 학교 또는 가정폭력 등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클리닉'을 개설하고 있는 보훈병원 정문용 과장(신경정신과)은 이 질환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정신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극단적인 사건과 사고가 빈발하고 있어 개인이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노출되면 누구나 이런 증상을 겪을 수 있다는 것.

1980년 처음으로 진단기준을 마련한 미국 정신의학회는 미국 국민 13명 중 1명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보고했을 정도. 특히 발병률이 남성은 5%인데 비해 여성은 10.4%여서 두배 이상 높다.

정과장은 "여성이나 어린이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아동학대 등 육체적인 공격이나 위협이 원인인 반면, 남성은 전쟁 경험이나 다른 사람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증상은 보통 충격 후 3개월 이내에 나타나지만 수년이 지난 뒤 돌발적으로 발병하기도 한다.

흔한 증상은 당시 상황이 꿈으로 재현되거나 반복해 기억된다는 것.

회피현상도 대표적인 증상이다. 사건이 일어난 공간은 물론 연상되는 물건, 심지어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는 만성 불안으로 인한 심장병, 불면증, 깜짝깜짝 놀라는 각성 반응,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치료=치료는 크게 심리 및 집단(가족)치료·약물 요법으로 나뉜다.

심리 상담은 자신의 질병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심각한 증상이 세월과 함께 점차 잊혀질 것이라는 인식을 버리게 하고, 적극 치료받도록 환자를 유도하는 것.

다음은 집단 치료.7~8명이 병에 관련한 정보를 서로 토론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처지를 소개하고, 인정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가족이나 부부가 관여해 대화를 통해 이해와 협력을 구하기도 한다.

약물은 심리치료와 더불어 항(抗)우울제와 항불안제가 사용된다.

약물의 치료반응이 두 달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 1~2주 간격으로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정과장은 "드러난 환자는 빙산의 일각일 정도로 우리 주변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가 많다"며 "개인의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는 일찍 발견할수록 치료효과가 높은 만큼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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