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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補正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0여년 전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재미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종적 편견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시기에 그러한 경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는 한 단체의 주문을 받고 이 대학 여론조사연구소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전 국민을 대표하는 표본을 골라 "흑인에게도 백인과 마찬가지의 취업기회가 주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흑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흑인에게는 백인과 같은 정도의 취업기회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와 반대로 흑인에게 동정적인 사람들의 3분의 2는 흑인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연구소는 조사 대상자들이 진심을 털어놓지 않고 '공공연한 거짓말(public lie)'을 했기 때문에 어떤 분석도 내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만약 정부 기관이나 단체가 이 데이터를 아전인수격으로 사용했다면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2년 전 4월 총선 때 주요 방송사들이 실시한 출구조사 내용이 개표 결과와 크게 달랐던 것도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유권자들의 속성을 꿰뚫어보지 못한 데 한 원인이 있다. 투표소에서 나오는 유권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자 대신에 다른 후보의 이름을 들이댔다. 유능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사태를 예측해서 선거 지역이나 유권자들의 연령층 또는 학력에 따라 나타나는 '공공연한 거짓말'을 보정(補正)하는 나름대로의 경험치를 적용해 진실을 끌어낸다. 특히 지역색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유권자들의 본심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판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여론조사도 더욱 힘들어진다. 무엇보다도 거짓말 보정 작업이 가장 큰 난관이다.

최근 민주당의 제주·울산 대선후보 경선과 관련된 일부 여론조사도 그런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조사 내용이 경선 결과와 다르게 나타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선거인단의 지지의사 은폐였다. 조사대상자인 모집단이 너무 적은 데다 해당 후보들의 조직전에도 휘말렸다.

19세기 후반부터 미·유럽 등에서 본격적인 선거 여론조사가 실시되면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사 방법이 강구돼 왔다. 요즘 주요 여론조사기관들의 신용은 정확도에 달려 있다. 조사에 앞서 각 문항의 순서와 어법에도 신경을 쓰고 응답자의 거짓말을 보정하는 방법 개발에 앞을 다투고 있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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