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규제에 막힌 '고용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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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장에선 사람이 없어 아우성인데 사람을 쓰려면 정부는 말도 안 되는 절차를 지키라고 합니다. 이러니 고용허가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습니까?" 경기도 부천의 플라스틱 사출업체 간부가 털어놓은 푸념이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인력을 일부 고용한 그는'알짜'를 뽑았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그래서 고용을 늘리려 하는데 지나친 규제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서가 있는 외국인을 채용하려면 한 달간 내국인 고용을 위해 노력했다는 증명을 해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합니까? 생활정보지에 구인광고를 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노동부 산하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인력을 구하려다 실패했을 때만 노력한 걸로 인정합니다." 결국, 정부가 인력 수급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고용허가제로 외국인을 채용하려면 먼저 내국인을 뽑으려는 노력을 하도록 한 것은 국내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정부의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노동부 관계자조차 "고무나 플라스틱.금속은 워낙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이라 구인노력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실토하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의 금형업체 간부는 이런 의문도 제기했다. "산업연수생제와 고용허가제 중 무조건 한 가지만 택하라고 강요하는데, 어차피 정부가 외국인력 수급 계획을 두 가지로 정했으면 기업이 둘 다 병행한다고 뭐가 나쁩니까?"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꼬리를 물자 정부 관계자들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노동부 실무 간부는 "국무조정실에 개선방안을 제시했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정부 부처 간 이견이 조정되지 않아 제도 자체가 동맥경화에 걸린 셈이다.

1994년 인권침해와 불법 체류자 양산 등 산업연수생제의 폐해를 개선하자는 논의가 시작된 지 꼭 10년 만인 지난 8월에 고용허가제가 도입됐다. 이해관계자들의 숱한 반발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힘들게 시작한 제도다. 하지만 이렇게 비현실적인 규제가 계속된다면 고용허가제의 활용을 늘려 궁극적으로는 산업연수생제를 폐지하려던 정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김기찬 정책기획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