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와 무역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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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뤄 오다 지난 주말에야 『뷰티풀 마인드』란 책과 영화를 보았다. 수학자 존 내시(John F Nash)의 천재성과 광기, 부부애와 정신병의 극복, 그리고 노벨경제학상의 영광에 관한 얘기에 가슴이 뭉클하면서 동시에 수학천재들과 경제학, 게임이론과 부시의 무역정책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돼 좋았다.

천재끼리의 갈등과 협조에 관한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대학원 학생 때 내시는 스승이자 게임이론의 창시자인 폰 노이만 교수를 찾아가 기존 이론에 비판적인 새 아이디어를 제안·설명했지만 변변찮다는 핀잔만 들었다. 그러나 다른 교수의 지도 아래 1950년에 완성된 그의 박사논문은 게임이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21세였던 그는 바로 이 27쪽짜리 논문 덕분에 44년 후 노벨상을 받게 된다. 홀대 사건 이후 내시는 노이만 교수를 멀리했고 게임이론에 관해서도 더 이상 연구하지 않았다. 시대가 조금 앞서기는 하지만 또 다른 수학천재 램지(Frank P Ramsey)는 케인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불후의 경제논문들을 남겨 대조를 이룬다. 우연의 일치로 그는 노이만과 같은 해(1903년)에 영국에서 태어났다.

제자뻘인 램지가 케인스의 확률론을 혹평하고 나섰을 때 20세나 연장이었던 케인스는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자리까지 마련해가며 경제학 연구를 독려해 주었다. 램지가 발표한 세편의 논문은 각각 정보경제학, 조세이론, 그리고 경제성장론의 분야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하지만 그는 천재답게(?) 26세 때 병으로 요절하고 만다. 내시와 노이만의 사이가 보다 원만했더라면, 그리고 램지가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경제학의 발전 속도는 훨씬 빨라졌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시의 게임이론이 천재들뿐만 아니라 대기업이나 국가들 사이에 있어서도 협조적 관계의 성립이 어렵다는 점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는 비협조적 게임이 더 현실적이라 보았고 그때의 균형상태(내시 균형)가 보다 일반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아울러 그것이 갖는 아쉬운 점을 밝히고 있다.

최근 보호무역조치를 취한 부시 대통령도 내시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비록 협조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 하더라도 그것이 개인이나 사회에 큰 이득을 가져다 준다면 시도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내시는 친구들한테 그룹미팅 전략을 설명하면서 이점을 강조한다. 남학생 각자가 이기심에 따라서만 행동한다면 결국은 아무도 자기가 희망하는 여학생과 짝을 이룰 수 없는 불행한 사태가 생긴다는 것이다. 서로 협조하는 전략으로 나가야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 그는 이것이 이기심만을 강조해 온 애덤 스미스 이론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발견이라고 자랑한다.

미국 정부가 이기적인 목적에서 수입철강에 대해 최고 30%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다른 나라들도 미국산 영화나 농산물 수입을 규제하는 전략으로 대응할 것이다. 미국의 기업들은 값싸고 품질 좋은 한국산 철강을 구하기 어렵게 되고 한국인들은 뷰티풀 마인드 같은 감동적인 영화를 볼 수 없게 된다. 결국 모든 나라의 수출이 줄어들고 소득감소와 실업증가라는 불행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세계 각국이 협조해 무역장벽을 없애는 길 밖에 없다. 특히 미국 같은 나라는 자유무역의 흐름을 주도하고 국가간의 협정을 솔선수범해 지켜나감으로써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한 무역질서의 정착에 기여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겠다. 부시 대통령은 게임이론의 가르침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며 무역규제조치를 철회함으로써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경제 전체에 큰 이득을 가져오게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30년대 세계대공황을 불러온 근본원인 중의 하나가 미국의 보호정책 때문에 촉발된 무역전쟁이었다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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