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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분양 시장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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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표적 대형·고급 상품인 주상복합아파트와 타운하우스. 주상복합은 서울 도심에서, 타운하우스는 수도권의 고급 주택을 상징하는 상품이다. 이들 주택이 최근 들어 크기를 줄이고 분양가를 내리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주택시장에 드리워진 침체의 그늘이 쉽게 걷히지 않자 건설사들이 마케팅으로만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분양대행사인 내외주건 정연식 상무는 “소수의 부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 잘 먹히지 않자 크기를 줄이고 분양가를 낮춰 소비층을 넓혀보자는 의도”라고 말했다. 몸집(크기)이 큰 주택들이 올 상반기 대부분 분양에 실패했다는 점이 업체들이 방향을 잡는 데 참고가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한국의 베벌리힐스’를 내세우며 고급 주거단지로 짓는 판교신도시 월든힐스 타운하우스. 전체의 34%인 102가구가 고급 타운하우스로는 규모가 작은 전용 109~147㎡형으로 이뤄졌다. [LH 제공]

◆고급 주택은 살 빼기 중=12년 만에 주택사업을 벌이는 동아건설이 서울 용산에서 선보일 더프라임(559가구)을 예로 들어 보자. 회사 측은 당초 전용 142~185㎡형의 대형 위주로 설계했다. 하지만 최근 계획을 바꿔 전용 85㎡ 이하의 중소형을 50% 이상 넣었다. 동아건설 박기성 차장은 “용산 일대의 파크자이나 파크타워·시티파크 등의 주상복합은 70% 이상이 전용 140㎡ 이상의 대형”이라며 “이런 곳에서 틈새를 노리려면 실수요자를 위한 중소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동아건설이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분양할 주상복합도 대형 대신 중형(전용 96~105㎡형)을 넣었다. 10월 인천 청라지구에서 주상복합을 분양할 예정인 반도건설 역시 대형에서 중형으로 사이즈를 줄일 계획이다. 이 회사 권영현 상무는 “인천은 수요가 탄탄한 편이지만 대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주택 크기를 조정키로 했다”고 전했다.

주택 공급이 많아 분양에 애를 먹는 수도권에서는 타운하우스가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동문건설이 고양시 삼송지구에서 선보일 연립주택형 타운하우스는 중형인 전용 95㎡형으로만 이뤄진다. 지금까지 고양·파주시에서 나온 타운하우스는 대개가 전용 130㎡형 이상의 중대형이었다.

경기도시공사가 10월께 경기도 가평 달전지구에서 분양할 타운하우스는 전용 130㎡ 이하로 이뤄진다. 동문건설 김시환 전무는 “고급 이미지는 그대로 가지고 가되 새로운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크기를 줄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특징은 분양가에 낀 기름기를 뺐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단지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분양가가 원가 수준인데, 건설사들은 여기에서 가격을 더 낮추기 시작했다. 동아건설은 더프라임을 상한제상 가격보다 3.3㎡당 400만원 내린 2200만원에 분양할 예정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10월께 강동구 천호동에서 분양할 트라팰리스는 예정 분양가가 3.3㎡당 1800만~1900만원 선으로 인근에서 올 2월 분양된 일반 아파트보다 100만~200만원 정도 싸다. 경기도시공사도 달전지구 타운하우스를 직접 시행해 분양가를 3.3㎡당 100만원 정도 낮춘 950만원 정도에 내놓을 계획이다.

◆수요층 확대 위한 몸부림=고급 주택들이 몸집을 줄여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수요층 확대다. 주택시장 경기가 가라앉은 요즘 총분양가를 낮춤으로써 실수요자들의 가격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분양대행사인 ㈜더감 이기성 사장은 “최근 분양 성적을 보면 전반적인 주택시장 침체에서도 중소형은 인기가 많은 편”이라며 “2~3인 가족이 살기에 크기나 가격이 맞아 실수요자들에게 잘 먹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급 주택들이 다이어트에 나선 데는 주택시장 침체 탓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구 등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필연적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연구위원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소득과 소비가 줄어들고 앞으로 인구가 감소하면서 주택시장에 변화가 올 것”이라며 “이 때문에 집 크기를 줄이는 다운사이징이 성행하고 있고 고급주택 시장도 이런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1985년 4.09명에서 2005년에는 2.88명으로 줄었다. 저출산 영향으로 2020년에는 가구당 2.48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정부는 내다본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선임연구원은 “최근 대형 주택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현상도 가족 수 감소와 무관하지 않다”며 “인구 감소, 보유세 부담 증가 등으로 대형 주택에 대한 선호도가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주택 경기가 좋을 때 경쟁적으로 쏟아냈던 비싼 대형 주상복합이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다이어트를 가속화한 원인으로 꼽힌다. 신동아건설 박운석 이사는 “금리인상 가능성 등으로 집을 살 때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없으므로 기본적으로 큰 집 수요가 줄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런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해 고급 주택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일·임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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