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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퇴진의 반면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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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그는 커다란 눈망울을 돌리면서 일정한 톤으로 정부 개혁, 지방자치 혁신 방안, 한·일 관계와 세계 정세까지 폭넓은 이슈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예감대로 총리가 됐다. 일본 국민들은 물론 기자도 그가 많은 일을 해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빗나갔다. 주목할 만한 개혁 정책은 없었고 리더십도 기대에 못 미쳤다. 그를 총리로 만들었던 공약들이 줄줄이 쪼그라들면서 오히려 혼란과 실망의 목소리만 커졌다.

오키나와현의 ‘후텐마 공약’은 긁어서 부스럼을 만든 경우다. 하토야마는 지난해 8월 총선에서 대등한 미·일 외교를 외치면서 후텐마의 미군 기지를 오키나와 현 밖으로 옮기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미국과의 2006년 합의안을 뒤집겠다는 것으로 글로벌 기지 재편을 서둘러온 미국의 발목을 잡는 행위였다. 일본의 어느 곳도 이 기지를 받아주지 않았고, 미국도 강하게 거부했다. 하토야마는 결국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미국과는 합의안을 유지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학교 졸업 때까지 만 15년간 매달 2만6000엔을 지급한다는 아동수당 공약도 말잔치가 될 공산이 커졌다. 수혜자가 둘이면 연간 62만4000엔에 달해 세대주가 젊은 가계에선 연봉의 10~20%가 족히 오르는 파격적인 복지정책이다. 연간 예산은 모두 5조4000억 엔으로 일본의 방위 예산 4조8000억 엔보다 많다. 그래서 일본의 보수 안정세력들은 이를 망국(亡國)의 정책이라며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 무료화 정책도 일본인들의 귀를 솔깃하게 한 간판 공약이다.

이런 꿈같은 공약들은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할 돈이 없다. 일본 국민들은 헛된 꿈을 좇았던 자신들의 선택을 책망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주 새로 출범한 간 나오토(管直人) 내각에 다시 기대를 걸고 있다. 이에 부응하려면 간 총리는 국민들을 설득해 장밋빛 공약들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2주 전 공약의 경연장인 지방선거가 있었다. 하지만 국민 삶에 직결되는 공약은 별로 이슈가 되지 않고 정치 선거의 색채가 너무 강했다. 당선자들은 하토야마의 실패에서 반면교사(反面敎師)를 얻을 수 있다. 선거에서 당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교훈이다. 허황된 공약은 빨리 고칠수록 좋다. 유권자들에게도 잘 감독할 의무가 있다. 잘못된 정책과 행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공약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더 무게를 둔 선택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