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죄다 풀어내는 입심 '황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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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대표작 『장길산』의 작가인지라 '황길산'으로도 불리는 황석영의 문단 내 공식 별호(別號)는 '황(黃)구라'다. 그의 타고난 입심을 지칭하는 별명인데, 물론 본인도 흔쾌하게 동의한다.

1998년 3월27일 저녁 마포 민족문학작가회의 근처 한 음식점. 89년 방북 이후 5년에 걸친 사실상의 해외 망명에 이은 5년간의 투옥 생활에서 풀려난 황씨가 10년만에 다시 문단으로 돌아오는 자리다. 서럽고도 숙연해야될 그 자리에서도 고은 시인은 '고아치', 소설가 송영씨는 '송아치'라는등 선후배에게 양아치 별명을 붙여주며 황씨는 졸지에 웃음판으로 몰아갔다.

특히 김일성 주석 앞에서 펼친 '남녁판 구라'와 "기래서 기래서"무릎을 치면서 바싹바싹 다가오며 황씨의 입담에 빠져들던 김주석의 모습 재연은 단연 압권이었다.

황씨의 '구라'는 천하의 모든 것들을 이야기 좌판에 끌어다놓고 일대 장풍을 일으키는 휘몰이 스타일이다. 허리띠를 확 풀어 뱀같이 훑어내리면서 "얘들은 가라"로 시작되는 뱀타령.

'황구라 18번'인 뱀타령에는 부패한 사회에 대한 시원한 풍자와 함께 모인 사람들을 향한 구체적 덕담도 들어있다.

후배 소설가 서해성씨는 "황구라 이야기에 취하다 보면 병든 귀신, 오그라진 귀신, 몽당귀신까지도 한을 풀고 갈 정도다. 듣는 이의 오장육부를 쥐어짰다가 제자리로 돌려놓는다"고 말한다. 요즘 그는 『삼국지』평설작업 마무리에 정신없다. 『삼국지』에 황씨의 '구라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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