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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맞먹는'冷鐵정책' : 세계 각국, 美 철강 高관세 비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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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이 지난 5일 유럽연합(EU)·한국·일본 등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특별관세(8~30%)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국제사회가 "일방주의 노선이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서부시대에나 가능한 일"=EU의 파스칼 라미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6일 "시장 접근을 일방적으로 제한하는 미 정부의 관세부과 조치는 서부시대에나 볼 수 있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어긋나는 보호주의 조치"라며 "유럽은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관세 부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자유시장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결정은 철강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통상정책이 불확실해질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면서 관세 부과로 초래될 무역마찰을 과거 냉전시대에 빗대 '냉철(冷鐵·cold steel)'이라고 꼬집었다.

일본의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외상은 "자유무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미국 철강산업의 구조조정만 늦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외교부의 쿵취안(孔泉) 대변인도 "WTO 원칙에 부합하는 결정이 아니다"며 힐난했다.

이런 가운데 6일자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관세 부과는 올 11월 의회 중간선거와 2004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자유무역 옹호론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비난을 무릅쓰고 이같은 결정을 한 것은 2000년 대선 때 격전지였던 웨스트버지니아·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주 등 철강 주산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주의=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일방주의적 강경 외교 노선을 추구해 왔다.

지난해 3월 "교토(京都)기후협약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고,12월엔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협정에서 탈퇴한다고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지난달 7일 열린 유엔 군축회의(CD)에선 생물무기협약(BWC)검증 의정서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거부하는 미국의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후 한때 동맹국들을 포용하는 다자(多者)외교노선을 추구하기도 했지만,최근 테러전선을 독자적으로 확대하면서 다시 국제사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서울=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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