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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남현주씨와 티베트인 남편 텐진 잠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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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잠양(右)과 빼마(한국명 남현주) 커플이 10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하기에 앞서 티베트 국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공안(중국 경찰)의 감시가 허술해지는 겨울철이 되면 수천명의 티베트인들이 정치적 자유를 찾아 히말라야의 험준한 설산(雪山)을 넘습니다. 망명 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를 찾아가는 거죠. 이 과정에서 상당수가 동상에 걸려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20대 후반의 한-티베트 커플이 억압받는 티베트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이들의 처지를 세상에 알릴 목적으로 10일 남한 국토종단에 나섰다. 티베트인 남편 텐진 잠양(28)과 한국인 아내 빼마(27.한국 이름 남현주)가 그 주인공. 이들은 이날 오전 흰 사자 문양의 티베트 국기를 꽂은 배낭을 걸머지고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을 출발해 임진각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약 600km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들은 하루 20~30㎞씩 걸어 한달 뒤인 내년 1월 10일께 통일전망대에 도착할 예정이다. 숙식은 절이나 여관.찜질방 같은 곳에서 해결할 생각이다.

두 사람이 남한 종단을 결심한 것은 지난 가을.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서 한국식당 '리[ri:]'를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목숨을 걸고 중국을 탈출하는 티베트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이들에게 뭔가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심하다 남한 종단을 생각해냈다.

"왜 한국이냐"는 질문에 대해 잠양은 "한국은 티베트의 미래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36년간 일제의 지배를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투쟁해 끝내 독립을 이뤄내고, 이후 경제성장을 통해 잘 살게 된 한국은 티베트 사람들이 닮고 싶어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2002년에 결혼했다. 1990년대 말 중앙대 영어과 재학 중 인도 여행을 갔다가 잠양을 알게 된 현주씨가 2000년 인도 델리대학으로 유학을 가면서 교제가 본격화됐고, 백년해로를 맺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결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현주씨 가족의 반대가 만만찮았다.

티베트의 명문 귀족인 '펜젠창' 가문의 후손인 잠양의 아버지는 중국의 귀족 숙청작업 때 가까스로 몸만 빠져나와 망명길에 올랐다. 이런 환경 때문에 잠양은 한때 방황의 시기를 겪었다. 고교를 중퇴하고 등반객들의 짐을 날라주는 트레킹 가이드와 식당일 등을 하며 생활해 왔다.

"현주씨 부모님들은 결혼 3년이 지나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으니 한국에 와서 살라고 권했지만 싫다고 그랬어요. 내 또래의 많은 티베트 젊은이가 고생하고 있는데 나만 혼자 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잠양)

두 사람은 국토 종단이 끝나면 다시 다람살라로 돌아가 거기서 티베트 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고 이제 힘없는 노인이 된 사람들을 지원하는 '롯바('돕는 이'라는 뜻의 티베트어) 운동'에 동참하며 살겠다고 했다.

해남=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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