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85> 제100화 '환란주범'은 누구인가 ⑨ 11·7 대책 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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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97년 11월 7일 오후 재경원과 한은 관계자들이 내 사무실로 모이고 있는 시간 필자는 재경원 엄낙용 차관보로부터 아태경제협력체(APEC)관련 보고를 받고 있었다.

嚴차관보는 보고를 끝낸뒤 일어서면서 내 팔을 잡아 끌더니 귓속말로 "자금지원을 요청하러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부총리께 말씀 드려 허락을 받았습니다. IMF 가면 팔 비틀려서 못 삽니다"고 했다.

순간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칫하다간 IMF에 가야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내심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홍콩증시 폭락 여파를 진정시키기 위해 10·29대책을 내놓은 지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았지만 상황은 심각했다.

외국인투자자금은 연일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가고 있었고, 금융기관과 기업이 달러를 과잉 매입하지 못하도록 재경원이 필사적으로 창구지도를 하고 한은이 보유외환을 풀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했지만 환율은 점점 더 올랐다.

증시 폭락, 외국인투자자금 이탈, 환율 상승이 서로 맞물려 벌어지면서 외환시장과 증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나는 嚴차관보가 나간 뒤 소집된 회의를 주재했다.

우선 경제전반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성장·물가·국제수지등 기초 경제여건은 건실하다는 데 별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환율 폭등과 외환보유액의 급감은 분명 비상상황이었다.

회의에선 한은이 달러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몇가지 외환규제 방안을 제시했지만 대부분이 국제규범과 어긋나고, 경제팀의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아 오히려 국제 신인도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어 시행하지 않기로 가닥이 잡혔다. 시장의 불안심리를 잡고, 환율 상승을 막으려면 상당한 규모의 외환확충이 절실했다.

재경원과 한은은 그 자리에서 IMF에 금융지원을 요청하는 문제도 다른 방안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정부 당국자들이 'IMF행'을 처음으로 논의한 것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두자는 것으로, IMF지원의 성격이나 규모 등 구체적인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똑같이 IMF 얘기를 꺼냈으면서도 한은과 재경원 간에는 인식차이가 있었다.

한은은 IMF의 지원을 받으려면 두달 내지 석달은 걸리기 때문에 곧바로 검토에 들어가야 한다는 쪽이었지만, 재경원은 긴급지원(패스트 트랙)이란 제도가 있어서 IMF자금 지원을 받는 데 한달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이를 한쪽으로 검토하면서 IMF행 이외의 외환확충 방안을 집중 검토하자는 의견이었다.

패스트 트랙은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가 IMF에 지원을 요청해도 실제 지원받기까지 너무 긴 기간이 소요돼 위기극복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문제제기에 따라 95년 IMF총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된 것으로, 실무적인 절차를 밟기 이전에 당사국의 경제 책임자와 IMF총재간에 자금지원에 관한 기본적인 합의를 이루면 구제금융 절차가 시작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였다.

그날 회의 때까지만 해도 한은은 이 '패스트 트랙'제도가 시행 중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종전과 같은 절차를 전제로 한다면 한시라도 빨리 검토를 시작해야 몇달후의 필요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 당장 IMF로부터 돈을 빌리자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IMF 회원국이 되는 주요 이유가 외환사정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기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IMF 지원 요청이 절대로 해선 안될 일도 아니었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IMF에 가는 것이 어디 이웃집에 놀러가는 일처럼 단순한 일인가. IMF 지원을 받으면 경제정책에 대해 IMF의 간섭을 받아야 하고,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받게 된다는 것도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IMF행에 앞서 재경원과 한은이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다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이날 회의에선 10·29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면서 한은이 일본 중앙은행을 두드려 보고, 국책은행이 해외차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받쳐주는 방안과 미국·일본으로부터 직접 지원을 받아내는 방안 등을 강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모든 방법을 다 써보고도 안될 때는 IMF로 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는 IMF지원 요청도 검토에 들어가기로 결론을 내고, 참석자들에게 극도로 보안에 유의해줄 것을 당부하고 회의를 끝냈다.

정리=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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