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개 신용금고 내일부터 '저축은행' "새 이름 값 하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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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다음달 1일 상호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상호신용금고들이 명실상부한 서민 금융기관으로 변신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은행'이라는 간판에 걸맞은 신뢰를 얻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전문 경영인을 도입하는 등 활발히 움직이는 금고가 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금고는 여전히 대주주 1인 지배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리스크 관리체제를 갖춘 곳도 많지 않다. 각종 사고에 연루되는 등 금고업계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재도약의 기회로=상호저축은행으로의 전환을 앞둔 금고업계에는 활기가 넘친다.

4일 금융결제원에 가입하면서 은행과 비슷한 결제기능을 갖추게 됐다. 전국 어디서나 입출금이 가능하고 시중은행과의 송금업무도 가능해졌다. 현재 50개 금고가 가입했으며 올 10월까지 모든 금고가 가입할 예정이다.

선발 금고들은 새로운 경영기법과 신상품을 내놓으며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의 삼화금고는 지난해 말 하나은행 출신의 전문 경영인을 영입, 은행의 선진 경영기법을 익히고 있다.

현대스위스·좋은·푸른금고 등은 최근 각각 국민·외환·LG카드사와 업무제휴 계약을 맺고 이미지 개선과 영업망 확충에 나섰다.

지난 20일 대양금고 등 부실 금고 6곳이 영업정지되면서 1997년 2백31개였던 금고가 1백21개로 줄었다.4년만에 1백10개가 퇴출된 것이다. 부실 금고의 정리로 숫자는 줄었지만 지난해 금고업계의 수신이 4조1천억원 늘어나 다시 20조원을 돌파하는 등 실적은 좋아졌다.

◇이름처럼 체질도 바꿔야=지난 26일 1백21개 금고사 사장들은 불법대출 근절 등을 다짐하는 자정 결의문을 채택했다.

진승현·정현준·이용호 등 각종 게이트에 금고가 이용되는 바람에 금고의 이미지가 나빠진 점을 의식한 조치다. 대주주가 금고를 사(私)금고처럼 운영, 금고 자금을 빼돌리면서 금고가 각종 게이트의 중심에 서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직도 대다수 금고가 1인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비은행검사국 관계자는 "1백21개 금고 중 상장·등록된 13개를 뺀 나머지는 대부분 오너와 특수관계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도입된 감사위원회제도도 자산 3천억원 이상 금고만 대상이 되다 보니 1백21개 금고 중 22곳만 이 제도를 도입했다.

여전히 주먹구구식인 리스크 관리체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시중 은행보다 예금 금리를 평균 1~2%포인트 높게 주는 금고는 저금리에 갈 곳을 못찾던 여유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금을 마땅히 운용할 곳을 찾지 못해 소액 신용대출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울지역 금고의 소액신용대출 연체율이 평균 10%를 넘는 등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리스크관리위원회는 규정상 자산 2천억원 이상에만 의무화돼 있어 33곳 외에 나머지 금고는 위원회가 없는 실정이다.

한장준 삼화금고 사장은 "불법 수수료와 선이자를 챙기는 브로커에 의한 대출과 불법 출자자 대출이 아직도 일부 남아있다"며 "개인사업자에 대한 대출 등 철저한 서민금고로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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