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회관장 도요안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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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노동사목회관 관장을 맡고 있는 도요안 신부(사진·본명 잭 트리솔리니, 살레시오 수도회)는 나이를 묻자 "37년생 소띠예요. 일복이 터져서 평생 일만 해왔습니다"며 빙그레 웃었다. 말대로 그는 한국을 다시 찾은 1968년 이후로 노동사목에 파묻혀 지냈다. 한국과의 인연은 3년간의 사목실습을 시작했던 59년으로 더 올라간다. 그런 그를 천주교계에서는 한국 노동운동의 산증인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 이름이 국적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의 가족들을 보다 쉽게 만나려고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요. 국적은 인위적인 것이고 고향은 마음이 만드는 것 아닙니까."

그가 태어난 곳은 9·11테러에 사라진 세계무역센터가 건너다 보이는 뉴욕주 저지시티다. 그래서 그 사건은 그에게 더욱 아프게 다가왔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단순화시키면 근본주의로 흘러요. 어느 종교든 예외일 수 없어요. 옹졸한 마음으로 하느님(신)을 받아들이고 남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하려 들면 큰 탈 나는 법입니다."

한국생활 37년이면 한국인의 장단점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만 한데도 한국인이 어떻게 변했느냐는 질문에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다. 뉘앙스 때문인지 영어를 곁들였다.

"Take some time to smell the coffee. 커피를 마셔도 맛을 음미할 줄 알아야죠.(사제관 뒤편의 보문사를 가리키며) 한달 전 어느날 새벽 예닐곱시에 뒷산을 보았더니 중턱에 달이 걸려 있더군요.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런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희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부지런한 것과 여유없이 사는 것과는 달라요. 부지런하되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면 윤리적인 문제가 많이 생겨요. 요즘 한국에도 가족붕괴가 심각하잖아요."

그는 한국에 정착하기 전 이탈리아에서 2년, 프랑스에서 4년 동안 신학을 공부했으며 사제 서품은 프랑스에서 받았다. 최근엔 하느님 말씀 안에서의 영적 생활로 안내하는 지침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가톨릭출판사)를 펴냈으며 지난해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고려대 노동대학원이 제정한 노동문화상 노동복지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오랜 세월 한국의 노동현장을 지켜본 그는 문제점을 이렇게 진단했다.

"집단 이기주의가 가장 마음에 걸려요. 사용자나 노동자 다 그래요. 공동선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는 비효율적입니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 노동자들은 적성에 맞지 않다면서 힘든 일을 기피하고 있어요. 어렸을 적 저는 가족으로부터 일 자체에, 그것이 아무리 험하고 힘들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정직하게 임하는 것이 본인과 사회, 더 나아가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게 진리였어요."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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