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 높아지는 재건축 ‘무상지분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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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최근 서울 강동구의 한 재건축 총회장 앞에서 조합원들이 무상지분율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함종선 기자]

요즘 서울 재건축 시장에서 화두는 ‘무상지분율’이다. 재건축할 때 조합원들이 갖는 공짜 지분율을 말한다. 무상지분율이 많을수록 조합원들은 분담금을 덜 내므로 이 지분율을 많이 제시하는 건설사를 선호한다.

강동구 고덕동 주공 6단지는 두산건설이 무상지분율 174%를 제시해 지난달 시공권을 따냈다. 이후 강동권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9개 단지가 높은 무상지분율을 요구하고 있다. 강동구 둔촌 주공은 160% 이상, 고덕 주공 3단지는 174% 이상 무상지분율을 제시하는 업체만 입찰 참여를 허용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고덕 주공 5단지와 7단지도 비슷한 기준이 제시됐다.

고덕지구의 한 재건축조합은 최근 임시총회를 열어 조합장과 임원들을 해임했다. 조합이 무상지분율 137%를 제시한 건설사를 지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공권 확보 여부는 이제 완전히 무상지분율이 쥐고 있는 셈이 됐다. 그런데 한쪽이 이득을 얻으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손해를 보는 게 시장 특성이다. 예컨대 조합원들이 무상지분율을 많이 갖고 가면 건설사가 공사비에서 손해를 보든가, 아니면 일반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를 높일 수밖에 없는 구도다.

둔촌 주공 아파트의 예를 들어 보자. 이 단지의 대지면적은 51만6676㎡이다. 여기에 조합이 입찰 제한 기준으로 정한 무상지분율 160%를 적용하면 82만6681㎡(51만6676㎡×160%)를 조합원에게 공짜로 줘야 한다. 분양면적(115만8489㎡)에서 이를 빼면 33만1808㎡가 일반분양 면적이다. 여기서 나오는 수입이 공사비와 사업비(금융비·설계비 등)를 웃돌아야 수익이 있는 것이다.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선 분양가가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H건설이 둔촌 주공의 입찰 기준에 맞춰 분양가를 산정한 결과 3.3㎡당 3400만원 수준이어야 공사 수지가 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주변 아파트 시세는 3.3㎡당 2000만원대 초·중반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분양가를 시세에 맞춰 분양하면 건설사는 공사에서 밑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건축 입찰을 포기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S건설은 지난 4일 모든 고덕 주공 재건축아파트 단지의 입찰 포기를 선언했다. 아무리 따져 봐도 수지가 안 맞는다는 게 이유다. 둔촌 주공의 H컨소시엄에 참여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고덕 2단지·5단지, 둔촌 주공 재건축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모두 입찰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반면 일거리가 적은 일부 중견건설사를 중심으로 입찰에 적극 참여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K건설 관계자는 “강남권 대형 재건축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려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입찰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건설사들은 당장 수지가 맞지 않더라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어느 정도 맞춰 나갈 수 있다는 속내도 있다. 법무법인 강산 김은유 대표변호사는 “무상지분율이 정해져 있지만 세부 계약 내용을 보면 설계 변경, 원자재 값 상승, 이주 지연 조합원 간 소송 등 다양한 이유로 무상지분율을 변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 박일한 기자
사진=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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