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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선 알몸으로 TV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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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케이블 TV 속의 성적 요소가 여론의 도마에 올라 난도질 당하는 광경을 본다. 그 한편에서는 잇따른 성추행 사건 보도와 더불어 성교육 부재가 낳은 피해를 역설하는 토크쇼가 진행 중이고,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은 무엇이 옳은지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곽대희의 性칼럼

외설 시비가 일어날 때마다 독일의 개방적인 성교육 태도가 머리에 떠오른다. 독일에서는 일반 대중잡지에도 성에 대한 거리낌 없는 질문과 그에 대한 성실하고 솔직한 해답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여론의 가차 없는 난도질을 당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질문: 저희 부부에게는 여섯 살짜리 아들과 네 살 된 딸이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바라는 바일 테지만, 우리도 자녀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하고 싶습니다. 언제쯤 시작하는 것이 적절한지 가르쳐 주십시오. 역시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딸에게 행하는 것이 낫겠지요? 응답: 학교에서 시행 중인, 판에 박힌 대로 가르치는 것은 좋은 성교육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잠깐 여기 앉거라! 너도 엄마의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안 될 나이가 되었단다’ 하는 식으로 말해서는 아무런 교육적 효과를 얻지 못합니다. 처음 시작은 부모가 욕실 같은 집 안 공간이나 해변에서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으로 입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녀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남자와 여자가 다른가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자연스럽게 마련됩니다. 이웃 여자가 임신해서 배가 커진 때에는 ‘아기가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준다면 출산에 대해서도 저항 없이 배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딸에게 초경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피임약의 사용법을 가르쳐 줄 날이 올 때까지 부모 자식 사이에 숨겨두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성교육 방향입니다.

지그슈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17세 소녀들의 50%가 성 체험을 했고, 2%의 소녀와 5%의 소년이 15세 이전에 섹스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중 약 35%가 피임에 대한 준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험한 놀이를 10년 후 당신의 아들과 딸이 하지 않게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너무 이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 충동이 없는 시기에 자연스럽게 가르쳐 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질문에서 나타난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딸에게’라는 교육 분담은 유럽의 가정 성교육 스타일이다. 신체 구조상의 기본적인 가르침 이외에 피임약 구입과 사용방법 등도 어머니의 지도 범위에 들어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성교육의 주안점은, 주로 ‘상대 여자 아이를 임신시키지 마라’ ‘성병 감염에 주의하라’ 등이고, 자신의 젊은 날의 경험을 근거로 해서 늘 콘돔을 지니고 다니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정도의 성에 관한 기초지식은 벌써부터 알고 있고, 현실적으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 거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 보수층 가정에서 무슨 헛소리냐고 반발할 것은 ‘자녀에게 부모가 알몸을 보인다’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것은 독일에서 하나의 전통적 성교육 방법으로 굳어진 상태다. 부모 쪽에서는 특별히 성교육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의식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독일에서는 태연히 알몸으로 집 안을 돌아다닌다.

욕조에 더운 물이 찰 때까지 거실에서 알몸으로 TV를 시청하거나 잡지를 뒤적이며 기다린다. 목욕을 마친 뒤에도 알몸인 채로 소파에 누워 신문을 읽거나 자녀와 장난을 치기도 한다. 처음에 어린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체적 차이나 하복부의 수북한 검은 털을 기묘하게 생각하지만, 얼마 안 가서 아무렇지 않게 평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다른가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독일식 교육은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일 수도 있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9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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