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를 위한 변명> 극단주의 해독제는 건강한 중도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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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러시아를 처음 찾은 기자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작은 출입문이었다. 유명 연구소 입구의 문은 허리를 굽혀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작았고 그 뒤에 항상 큰 대문이 잇따랐다. 물론 외침이나 추위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이것은 사회적 폐쇄성과 러시아 특유의 극단주의와도 무관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러시아 문화는 대체로 극단주의로 규정된다. 10여년 전 러시아가 '인간적 요소'를 받아들여 높은 단계의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시작한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은 그 목적과 달리 반대의 극단,'천민 자본주의'로 치닫고 있었다. 이는 곧 러시아의 극단주의 문화와 연결지어 해석됐다. 1918년의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주의화도 이런 극단주의의 산물일 수 있다. "굽은 막대기를 펴기 위해서는 반대 쪽으로 더 많이 구부려야 한다"는 레닌의 철학도 이런 극단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극단주의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전통적인 명분주의,'극단의 시대'를 이끌었던 반공주의, 다른 지역을 배제하는 지역주의 모두 이런 극단주의의 한 형태다. 타자(他者)를 부정하는 이분법적 사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 이런 극단주의 아래서 중도는 곧 '박쥐'로 통했다.

대신 피아(彼我)를 명확히 구분한 주장일수록 상황을 쉽게 주도해 나갔다. 이런 극단주의의 사회적 비용도 엄청났던 것은 물론이다.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회적 갈등은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그렇지만 중앙일보가 국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조사한 국회의원·정당·국민 이념조사는 매우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았다. 온건진보·온건보수를 포함한 중도가 두텁게 형성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단순·과격한' 극단에 휩쓸리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의 확인이다.

이런 결과에는 폐쇄성을 열어 젖힌 정보화도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매체가 발달하므로 사실을 '단순·과격'하게 가공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낡은 형식의 의사소통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대신 다양한 정보를 토대로 서로 다른 해석의 경쟁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는 아직 극단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교육평준화, 대북 원조 등 현안이 등장할 때마다 밝혀지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극단으로 치닫는 데 익숙하다. 여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사회적 교양이 제고돼야 한다.'자유냐 평등이냐'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자유도 평등도'라는 중도적 논리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교양이 전제돼야 한다. 사회적 교양수준이 낮을수록 일견 명쾌해 보이는 극단주의가 횡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극단주의와 그것이 낳은 도그마의 천적은 사실에 기반한 실용적 태도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북한의 위협을 사실적으로 밝혀야만 허구가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단적 진보·보수 모두 사실을 바탕으로 그 허상을 벗겨내야 한다.

아직 우리 사회의 통합과 다양성을 옥죄고 있는 극단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과연 실사구시적으로 사고하고 논쟁하는 사회적 훈련이 제대로 돼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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