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땐 43명… 지금은 11명 통상전문가 자리잡기 힘든 통상교섭본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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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통상환경이 급변하는 가운데 국내 통상정책의 중추를 맡고 있는 통상교섭본부의 위상과 전문성이 재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998년 현 정부 출범 직후 정부조직 개편으로 통상정책 주무 부처가 통상산업부에서 외교통상부로 바뀌면서 외교부 내에 통상교섭본부가 신설됐다. 통상교섭본부는 그동안 국내외 통상협상·통상정책 조정 업무를 맡아왔으나 잦은 인사 등으로 정책의 일관성과 전문성 유지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쉬운 전문인력 활용=본부 신설 당시 재경부·통상산업부 등 경제부처에서 43명의 통상 전문인력이 옮겨와 전체 인력(97명·7급 이상)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으나 4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 외국 공관 등으로 파견나가 본부 내에는 11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해외 공관으로 나간 직원 중에도 세계무역기구(WTO)본부가 있는 제네바 대표부의 4명을 제외하고는 고유의 통상업무와는 관련 없는 영사·부영사직에 8명이나 발령받는 등 전문성 유지가 어려운 실정이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외부 전입 인사들도 여타 외교관처럼 본부와 재외공관간의 순환 근무를 실시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경우 실무진 대부분이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재직하는 것과 비교할 때 2~3년마다 순환 근무하는 현행 방식은 전문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 초 인사에서도 한·미간 통상정책을 조율하는 핵심 라인인 통상교섭조정관(1급)·지역통상국장·북미통상과장 등이 한꺼번에 교체됐다. 뉴 라운드 협상에서도 2년에 한번씩 열리는 각료회의 때마다 실무진이 자주 바뀌는 바람에 협상 분위기 파악과 인맥 구축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상교섭본부는 변호사·교수 등 전문가를 영입하기 위해 통상전문관(계약직) 제도를 신설했으나 낮은 보수와 폐쇄적인 조직 분위기 등으로 그 수가 12명에서 6명으로 줄어들었다.

◇어정쩡한 위상=인사권과 부처간 업무 조정권이 없는 본부장의 위상도 문제다. 직제상 본부장은 장관급이지만 통상교섭본부 내의 인사·예산권 등 실질적 권한이 없는 데다 국무회의의 당연직 참석자도 아니어서 부처간 업무 조정에 한계가 있다. 한·미 투자협정,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등에서도 농산물 문제·스크린쿼터 축소 등 현안에 대해 부처의 입장을 조정할 권한이 없어 협상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영문 직명도 정식 각료임을 뜻하는 'Minister of trade' 대신 다소 약화된 의미인 'Minister for trade'라는 명칭을 사용, 통상장관 회담 등 대외 협상에서도 애로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통상교섭본부의 전문성을 높이고 실제적인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무역대표부(KTR) 등의 독립 부처로 만드는 등 현행 체제에 대한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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